AI는 세계다, 존재 방식을 리셋하라

by 마르코 루시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묘한 이중성을 띤다. 한쪽에서는 수만 명의 해고가 단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백억 달러가 AI 연구에 투자된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기술 산업 스스로가 가장 큰 격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업가정신과 혁신 리더십을 다루는 여러 포럼에서 AI 시대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이 복잡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걸까?


15세기 인쇄술, 18세기 증기기관, 20세기 전기 혁명. 역사를 바꾼 기술들은 언제나 한 방향의 공통 패턴을 가졌다. 초기 혼란, 중기 적응, 후기 기회의 창출. 그러나 지금의 AI는 다르다. 도입 속도는 수십 배 빠르며, 과거처럼 블루칼라의 일자리가 아닌 화이트칼라의 인지 노동부터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법률, 의료, 교육, 예술 영역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을 재편할 정도다. 변화는 한가한 예측의 영역을 벗어났다. 이는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형이다.


이런 패러다임 리셋 앞에서 인텔 창업자 앤디 그루브는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라고 말했다.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건 지나친 낙관도, 방어적 보수도 아닌, 집착에 가까운 적응력이다. 지금은 AI가 세상의 규칙을 다시 쓰는 시기다.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는 리더십은 퇴출당한다. 과거를 반복하는 리더가 아니라, 과거를 버릴 수 있는 리더만이 전략적 변곡점을 돌파할 수 있다.


그 변곡점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일자리에서 ‘일’과 ‘자리’가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는 ‘일’(job)과 그 일이 수행되던 ‘자리’(place)를 해체하고 있다. 일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일을 가능하게 했던 자리와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고학력 엔지니어가 해고된 뒤 몇 달째 실직 상태인 현실은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존재하던 직업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고 있다. AI는 '자격'보다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누구인가? 앞으로의 인재는 '인간+AI' 구조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직관과 창의성은 인간의 몫이지만, 정보 해석과 연산은 AI가 앞선다. 이 둘의 결합이 곧 신(新) 인재다. 역설적이게도, 순전히 인지적 업무보다 물리적 기술과 인간적 접촉이 필요한 영역의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현장성과 창의성을 결합한 직업들이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재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메타는 AI 연구 조직 재편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고, 구글, 오픈 AI, 테슬라도 인재 확보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HR 전략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여전히 HR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기업은 이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 경쟁은 결국 사람의 싸움이다. 더 나아가 인프라 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빅테크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에너지 기반시설에 총력전을 펼친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수입하는 나라'에서 '함께 만드는 나라'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 경쟁을 보며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AI 혁신 열차는 이미 출발했다. 아직 승차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그러나 늦었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물적 인프라(데이터센터, 전력망)와 인적 인프라(인재 교육, 제도 개편)에 전면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AI를 단순히 도구로 이해하는 시대는 지났다. AI는 존재이고 환경이다. 우리는 도구를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파트너를 설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쓰는 사람이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한다'는 말조차 이제 낡았다. AI는 도구가 아닌 세계다. 전략적 변곡점에 서 있는 지금, 가장 위험한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은 조직을 리셋할 인재를, 개인은 자신의 '업'을 다시 정의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미래는 기술이 아닌, 선택하는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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