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싶어 6화 -
월요일 아침이다.
알람이 울렸지만 손을 뻗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이며 침대 옆
작은 테이블을 파랗게 물들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알람도 그냥 두었다.
5분 간격으로 울리는 소리가
점점 더 요구하는 것처럼 들렸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일어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속에서 느리게 떠다니고 있었다.
평소라면 기분 좋은 아침이었을 텐데,
그날은 그 빛조차 무거웠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화면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빨간 배지로 표시된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들을 터치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누워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는 순간 몸이 움찔했다.
거울 속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낯설어 보였다. 칫솔질을 하면서 생각했다.
입 안에서 거품이 부글거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누구를 위한 건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화장대 앞에 앉아 파운데이션을 바르다가 손이 멈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을 걸어가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의 의미를...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모두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목적이 있을까.
이 사람들도 나처럼
무기력한 아침을 견디고 온 건 아닐까.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면서도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건 아닐까.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승객들의 몸이 일제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똑같아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모든 과정이
누군가 미리 녹화해 둔 영상을 재생하는 것 같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책상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었지만 타이핑할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 하루하루가
그냥 지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모든 일상이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동료가 "뭐 먹을까?" 하고 물었을 때,
입에서 나온 말은 "아무거나"였다.
정말로 아무거나였다.
메뉴판을 들여다봐도 글자들이 그냥 글자였다.
무엇을 먹든 상관없었다.
음식이 나와서 젓가락을 들었지만,
동료는 맛있다고 했지만
혀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오후 회의가 있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이야기했다.
프로젝트 계획, 일정 조율, 역할 분담.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수족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반응했지만,
정말로 듣고 있지는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할당받은 업무를 봤다.
A4 용지에 적힌 할 일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정체되어 있는 게 느껴졌다.
내 집인데도 내 집 같지 않았다.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리모컨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집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계 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던 소리였는데,
그날은 유독 크게 들렸다.
냉장고를 열어봤다가 그냥 닫았다.
결국 컵라면을 끓였다.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3분이 이렇게 긴 시간인 줄 몰랐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맛을 느끼지 못했다.
뜨겁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짠맛도, 매운맛도 무뎌져 있었다.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침구가 차가웠다가 점점 체온으로 따뜻해졌다.
천장을 바라봤다.
흰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뭔가를 했을 텐데.
하지만 오늘은 그런 기력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우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텅 비어 있었다.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한참 후에 깨달았다.
창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방 안에 희미한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산적이어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멈춰 있어도 되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천장 쪽으로 뻗어봤다.
다섯 개의 그림자가 천장에 길게 드리워졌다.
이런 단순한 동작조차 며칠 만에 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꼭 잘못된 하루는 아닌 것 같았다.
귀를 기울여봤다.
시계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위층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던 소리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들렸다.
가끔은 이런 날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 의미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고,
의미를 찾지 못해도 괜찮았다.
오늘 하루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였다.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일은 어떨지 몰랐다.
다시 기력이 돌아올 수도 있고,
또 이런 날일 수도 있었다.
어떤 쪽이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