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는 복순이다 (4화)

by 마르코 루시

제4장 신호가 끊기는 밤


비는 냄새로 먼저 온다. 인간들은 늘 늦는다. 구름이 내려앉자 바람은 젖은 흙을 실어 왔다.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비의 시작은 젖은 신문, 곧 터질 전선, 그리고 뒤집힌 우산 냄새다. 오늘은 그 세 가지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냄새가 있었다. 굴착기. 저 멀리서 땅을 파헤치는 쇳소리가 비 냄새와 뒤섞였다. 나는 귀를 접었다. 며칠 전에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불안했다. 소리가 크면 냄새가 얇아진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소리와 냄새가 함께 두꺼워지고 있었다.


프로그래머가 내 목줄의 신호를 확인했다. 작은 기계가 초록 불빛을 깜빡였고, 그의 손가락은 계속 떨렸다. 밤샘 커피와 배터리 팽창의 열 냄새가 그대로였다. 그를 차음 만났을 때 맡았던 그 냄새, 변하지 않는 외로움이 그 아래 깔려 있었다. 카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신호 강도 95%. 완벽합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띠링, 띠링.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웃는 얼굴, 우산, 번개, 하트. 인간들은 긴장을 그림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림은 방수 기능이 없다. 젖으면 번진다.


"복순이 실시간 위치" 스크린숏이 채팅방에 올라왔다. 작은 빨간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역시 IT의 힘!" "과학 만세!" 편의점피터가 엄지 이모티콘을 보냈다. 나는 코를 찡그렸다. 화면은 숫자를 보여주지만, 코는 진실을 맡는다. 인간은 거짓말하는 것을 더 믿는다. 냄새는 거짓말을 못 하지만, 화면은 쉽게 거짓말한다.


"혹시 전파 간섭 생기면 어쩌죠?" 꼬마쌤이 물었다. 우산을 쓰고 달리던 그녀의 우산은 곧 뒤집혔다. 분필과 아이들 땀, 작은 도서관 책등의 냄새가 비에 젖어 더 진해졌다. 철퍽, 소리가 나자 모두 웃었지만 웃음 속에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편의점피터는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우산 사망.' 그 밑에는 하하 스티커가 줄줄이 붙었다. 나는 코를 찡그렸다. 농담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웃음 뒤에는 언제나 떨림이 숨어 있다.


지게차아저씨가 작업등을 켰다. 기름과 수프와 야간 근무의 냄새, 처음부터 나를 돌봐준 그 익숙한 조합이 젖은 철판 냄새와 섞였다. 그는 모자를 깊게 눌렀고, 입에서는 욕이 흘렀다. "아 씨바! 이 와중에 비라니." 짧은 말이었지만,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이 더 솔직했다. 나는 꼬리를 두 번 흔들었다. 인간의 욕설은 가끔 기도보다 더 간절하다.


그때, 쾅! 하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비 때문에 벽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귀가 아팠다. 심장이 뛰었다. 도망쳐야 했다. 철문을 밀치고 나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바닥이 젖은 콘크리트를 미끄러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지게차아저씨가 "어? 복순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빗소리가 그 목소리를 삼켰다. 나는 계속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비상 체계가 가동됐다. "순찰 강화, 위치 공유, 비상콜 준비." 프로그래머가 다시 지시했다. 채팅창에는 확인 이모티콘이 줄줄이 달렸다. 이때부터 각자의 전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턴닥터는 허둥대며 청진기를 목에 걸고 의료가방을 챙겼다. "저체온증은 30분이 골든타임입니다." 라텍스와 멘톨과 미세한 긴장의 냄새가 더 진해졌다. 청진기는 나를 듣기엔 쓸모없지만, 그는 그걸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하는 듯했다. 인간은 늘 자기 도구를 방패처럼 쥔다.


할매총무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파스와 동전, 오래된 지갑의 가죽 냄새는 여전했다. "이 손전등, 십 년은 됐지. 내 강아지 키울 때도 이걸로..." 그녀는 자랑처럼 말했지만 불빛은 깜빡거렸다. 그래도 그녀의 손에서는 내 새끼들 입양 때와 같은 든든함이 풍겼다. 비상금 봉투 냄새도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훈련 짱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바람 방향을 체크했다. "개는 바람 반대쪽으로 피합니다. 수색 동선을 이쪽으로." 호루라기 금속과 쑥스러움의 냄새 위에 전문가의 냄새가 덧입혀졌다. 가끔 내 눈치만 살피던 그가 지금은 확신에 차 있었다.


철통경비는 무전기에 대고 "타 구역 경비들, CCTV 확인 요청"을 연달아 불렀다. 무전기의 삐삐와 낡은 군용 점퍼의 먼지 냄새 사이로 야간 근무 경험의 무게가 느껴졌다. 플랜맨은 전에 그렸던 스케치를 꺼내 프로그래머와 함께 "마지막 신호 지점 반경 50미터 오차범위" 계산에 몰두했다. 잉크와 복사용지와 예산 부족의 바람 냄새가 비에도 불구하고 선명했다.


나는 강변 쪽을 향해 귀를 세웠다. 어둠과 물살이 섞인 공기. 물은 언제나 아래로만 간다. 그러나 인간은 늘 위만 본다.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떨렸고, 그 속에서 낯선 소용돌이가 일었다. 물은 무겁고, 냄새는 가볍다. 그래서 먼저 알 수 있다. 어디선가 굴착기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이 소리는 내게 다시 도망치라고 속삭였다.


수색이 시작됐다. 손전등들이 하나둘 켜져 어둠을 잘랐다. 발자국은 물웅덩이에 빠졌다. 첨벙, 첨벙. 각자의 냄새가 비에 젖으며 더 진해졌다. 철통경비는 무전기에 대고 "동쪽 확인"을 반복했다. 돌봄 간호사는 신발이 젖은 채 "수위 올라갑니다"라고 소리쳤다. 알코올 솜과 과일 젤리, 그리고 끝나지 않은 교대의 피곤 냄새가 빗물과 섞였다. 내 새끼들을 돌보던 그 손길의 냄새였다. 꼬마쌤은 아이들 이름을 부르듯 "복순아!" 하고 외쳤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름 부르지 말고 간식 흔들라니까. 인간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게 가장 큰 위로라 생각한다. 그게 가장 무력한 방식이라는 걸 모른다.


다큐유튜버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반복했다. 카메라 가방과 편집실 먼지, 구독자 숫자에 대한 묘한 허기 냄새가 비에 씻겨 내려갔다. "기록보다 생명이 먼저지." 그가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완전히 꺼버렸다. 오르지 않는 조회수를 쫓던 그가 지금은 달랐다.


비는 더 거세졌다. 바람은 플라스틱 천막을 찢었고, 가로등이 깜빡였다. 편의점피터는 비닐봉지에 사료를 담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 여기 있어요!" 그러나 도시락 김밥과 행사 스티커 냄새가 사료보다 더 강하게 번졌다. 얼마 전 사료 브랜드로 싸우던 그가 지금은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나는 냄새만 맡고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들의 초조함은 빨리 상한다. 생선보다 더.


갑자기 GPS 신호가 끊겼다. 화면 위 빨간 점이 사라졌다. 프로그래머의 얼굴이 하얘졌다. "신호 튄다!" 카톡방에 짧은 메시지가 떴다. "신호 없음." 순간 모두가 멈췄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더 큰 소음이 찾아온다. 침묵은 기계가 아니라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채팅방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머: 죄송합니다... 기술적 한계가..."

"편의점피터: 지금 사과가 중요해? 빨리 찾아야지!"
"꼬마쌤: 모두 침착해요ㅠㅠ"

"철통경비: 119 부를까요?"

"할매총무: 아직 아니야. 우리가 먼저 찾아보자"

"돌봄 간호사: 체온 유지가 급선무예요"

"인턴닥터: 저체온증 위험 시간 체크 중"


나는 화면 속 글자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의 손가락 냄새로 알 수 있었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간다. 급할수록 글씨는 많아지고, 진심은 줄어든다. 사람들의 눈빛이 서로를 향해 흔들렸다. 나는 몸을 낮추었다. 교량 하부, 어둠과 물살이 부딪히는 곳에서 낯선 소용돌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물가에 천천히 다가갔다. 발바닥이 젖고, 등 털이 차갑게 눌렸다.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파고들었다. 차갑고 끈적했다. 털끝에 맺힌 물방울들이 무거워져 하나씩 떨어졌다. 물 냄새는 묘하다. 한쪽은 이끼, 다른 한쪽은 녹슨 철. 상류에서는 산 냄새가, 하류에서는 바다 냄새가 동시에 올라왔다. 코끝이 동시에 당겨졌다. 위험은 항상 양쪽에서 온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만, 냄새는 모든 방향으로 간다. 무거운 것은 늦고, 가벼운 것이 먼저 진실을 전한다.


도망과 시험은 같은 발걸음을 갖는다. 다른 건 뒤돌아보는 마음뿐이다. 열한의 냄새가 흩어지는 걸까, 모이는 걸까?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어미 냄새도 이렇게 멀어졌었나? 물살이 거세졌다. 발바닥이 미끄러웠다.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으며.

"복순아!" "이쪽으로!" "발소리 들려요!"

훈련 짱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지만 끝내 불지 않았다. 대신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나는 그 숨소리에서 두려움을 맡았다. 두려움은 식은 숯처럼 희미한 연기 냄새다. 그런데 그 냄새 속에 또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결의. 포기와 의지는 같은 자리에서 태어난다.


지게차아저씨의 작업등이 강을 가르며 번쩍였다. 빛이 물 위에 흩어졌다. 그는 소리쳤다. "거기 있지? 버티고 있어!"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기도가 섞여 있었다. 처음 내 이름을 부를 때와 같은 떨림이 있었다. 그때 그는 혼자였고, 지금은 열한 명이 함께였다. 나는 짖었다. 단단하게, 길게.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가 아니라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로. 어둠이 갈라졌다.


인간들이 소리를 따라 달려왔다. 체인처럼 연결된 손들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철통경비의 무전기 안내, 지게차아저씨의 작업등, 훈련 짱의 수색 동선 지시가 완벽한 팀워크를 이뤘다. 간호사의 알코올, 피터의 도시락 봉투, 다큐유튜버의 꺼진 카메라, 꼬마쌤의 젖은 우산, 할매총무의 십 년 된 손전등. 모든 냄새가 동시에 몰려왔다. 각자 다른 냄새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구조" 냄새로 합쳐졌다.


나는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선택이었다.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스트레칭일 수도 있고, 합의의 신호일 수도 있었다. 인간들은 눈물을 보였고, 나는 그냥 몸을 털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고 있었다. 찾는다는 건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는 일이다. 그들은 나를 찾으며 서로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았다. 열한 명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은 한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덮었다. 담요, 수건, 젖은 손. 체온이 파도처럼 겹쳐졌다. 떨림이 내 털을 타고 내려왔다. 떨림은 공포와 안도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인간은 그 경계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나는 그 냄새를 코끝에 저장했다. 언젠가 다시 꺼내기 위해. 그들의 떨림은 내 상처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버린 탓이었다. 외로움이라는 공통의 냄새를 가진 열한 명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강물은 차가웠지만, 손들은 따뜻했다. 나는 그들의 온기를 맡았다. 돌봄이란 서로를 붙잡는 일이다. 그들이 나를 돌본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밤이 길어서, 외로움이 무거워서, 그들은 내 곁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서로의 곁에도 모여 있을 것이다.


비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는 젖은 담요 속에서 생각했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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