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복(福)을 나누는 사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병원 침대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상처보다 그들의 상처가 먼저 아물고 있다는 것을. 소독약과 라텍스 장갑 사이로 스며드는 것은 안도의 냄새였다. 달콤하고 짠 냄새. 폭우가 쏟아지던 그 밤, 물에 젖은 손들이 나를 끌어안을 때의 그 떨림이 이제는 평온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턴닥터가 청진기를 내 가슴에 댔다. 라텍스와 멘톨과 미세한 긴장. 처음부터 맡아왔던 그 조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를 게 있었다. 긴장 대신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심박수 정상, 체온 정상.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그가 말하자 카톡방에서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웃는 얼굴, 하트, 박수하는 손. 인간들은 안도를 손가락 그림으로 표현한다. 나는 꼬리로 표현한다. 더 정확하다.
돌봄 간호사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알코올 솜과 과일 젤리, 그리고 끝나지 않은 교대의 피곤. 내 새끼들을 받아낸 그 손길과 똑같은 냄새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것, '희망'도 섞여 있었다. 희망은 새벽 공기처럼 상쾌한 냄새였다. "복순아,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된 것 같지?" 그녀가 말할 때 나는 그녀의 손등을 핥았다. 짠맛이 났다. 야근의 맛이었지만, 이제는 쓰지 않았다.
플랜맨이 새로운 문서 뭉치를 들고 왔다. "복순이 전담 운영 매뉴얼 최종본입니다!" 잉크와 복사용지와 예산 부족의 바람. 처음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냄새였지만, 지금은 성취의 냄새가 더 강했다. A4 용지 10장 짜리 완벽한 매뉴얼이었다. 급식 시간표, 비상연락망, 건강체크 주기, 날씨별 산책 코스, 심지어 새 멤버 승인 절차까지. "이제 공식적으로 '공유 돌봄 존'이 영구 승인됐어요." 나는 종이 냄새를 킁킁거렸다. 규칙이 많을수록 마음도 많다는 법칙을 인간들은 아직 모른다.
할매총무가 보자기에 싸인 것을 꺼냈다. "떡 해왔어." 파스와 동전, 오래된 지갑의 가죽 냄새 위에 오늘은 특별한 냄새가 하나 더 있었다. 자부심. 전에 꺼냈던 비상금이 이제는 당당한 감사 표현으로 변한 것이다. 하얀 떡은 아직 따뜻했다. "고생한 사람들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사람들이 하나씩 받아 들며 웃었다. 나도 한 조각 얻어먹었다. 할매의 손맛은 설탕보다 달았다.
편의점피터가 박스를 꺼냈다. "이거, 다들 손 거칠어져서요." 도시락 김밥과 행사 스티커 냄새는 그대로였지만, 오늘은 특별한 냄새가 추가되어 있었다. 라벤더향 핸드크림. 만이천 원짜리 정성이었다. "다 같이 쓰시라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박스를 킁킁거렸다. 인간들은 서로의 손을 챙기면서 마음을 위로받는다. 손은 마음의 입구니까.
프로그래머가 새로운 앱을 보여줬다. "복순이 케어 시스템 2.0이에요." 밤샘 커피와 배터리 팽창의 열.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그 냄새지만, 지금은 완성의 냄새가 더 강했다. "이제 날씨, 급식량, 건강상태, 심지어 기분까지 한 번에 관리돼요." 나는 목에 찬 GPS 장치를 흔들어봤다. 기계는 차갑지만, 만든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다.
철통경비가 순찰을 돌며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체계적이네." 무전기의 삐삐와 낡은 군용 점퍼의 먼지. 공지를 떼었다 붙였다 하던 그 냄새 그대로였지만, 지금은 당당함이 섞여 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전국 모범사례로 보고 올린다더라고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인간들은 문제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자랑한다. 정작 중요한 건 매일 사료 챙기는 일인데 말이다.
훈련짱이 새 목줄을 들고 왔다. "이번엔 가장 편한 걸로 골랐어요." 호루라기 금속과 쑥스러움. 처음에 내가 거부했던 그 냄새였지만, 지금은 달라 보였다. 쑥스러움보다 친밀함이 더 강했다. "괜찮을까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기울여 냄새를 맡아봤다. 새 가죽과 배려가 묻어 있었다. 나는 목을 내밀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허락했다.
다큐유튜버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했다. "촬영 허가받고 싶은데요." 카메라 가방과 편집실 먼지, 구독자 숫자에 대한 묘한 허기. 구조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껐던 그가 지금은 또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앞발로 땅을 한 번 긁었다. 허락. 하지만 조건이 있다. 간식은 필수다.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진지했다.
꼬마쌤이 아이들 그림을 가져왔다. "얘들이 복순이 그려왔어요." 분필과 아이들 땀, 작은 도서관의 책 등. 변하지 않은 냄새였지만, 지금은 뿌듯함이 더 강했다. 그림 속 나는 열한 명의 어른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웃지 않지만, 아이들은 웃는 입을 그려 넣었다. 그게 자기들 마음이니까.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정직하다.
지게차아저씨가 야근을 마치고 왔다. 기름과 수프와 야간 근무의 냄새.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조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뿌듯한 냄새도 함께 났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처음 널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는 그의 발치에 앉았다. 작업등 불빛이 내 털을 비췄다. 처음 그날 밤처럼.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십 년 뒤에도 이렇게 있을까?" 그가 혼잣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십 년 뒤에도 너희는 내 곁에 있을 거야. 아니, 내가 너희 곁에 있을 거야. 그런데 십 년 뒤엔 우리가 스무 명일 수도 있고, 서른 명일 수도 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냄새가 중요하다.
그때, 낯선 발걸음이 들렸다. 새로운 경비 아저씨였다. 철통경비가 그를 소개했다. "새로 오신 김부장님이에요. 복순이 담당도 같이 하실 거예요." 새 경비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에서는 비누 냄새와 약간의 긴장이 났다. 첫 출근의 냄새였다. 그리고 또 다른 냄새도 있었다. 휘발유. 오토바이를 타고 왔나 보다.
"안녕, 복순아."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처음에 정한 규칙. 열한 명만 허락. 열두 번째는 자동 퇴장. 하지만 그 밤, 우리가 배운 게 있었다. 완성이라는 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나는 그의 손가락 냄새를 맡아봤다. 새로운 냄새였지만, 익숙한 것도 있었다. 외로움. 그 냄새만큼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코를 두 번 킁킁거렸다. 그리고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처음이라면 으르렁거렸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트레칭일 수도 있고, 환영의 신호일 수도 있는 그런 꼬리 흔들기였다. 새 경비 아저씨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숨이었다.
철통경비가 웃으며 말했다. "복순이가 인정했네요. 축하드려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열둘이다. 그러나 아직 내 마음속에 냄새는 열한개다. 시간이 필요하다.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 그 위에 각자의 개성이 얹어진 향. 새로운 사람이 와도 그 기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김부장은 밤 순찰을 철통경비와 나누어 맡았다. 그의 발걸음은 아직 어색했지만, 무전기 사용법은 빨리 익혔다. "복순이 구역 이상 무." 그가 말할 때마다 나는 귀를 세웠다. 새로운 목소리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 우리 냄새로 포함 될 것이다.
할매총무가 김부장에게 핸드크림을 하나 더 건넸다. "겨울이니까 손 관리 잘하세요." 파스 냄새 사이로 할머니의 마음이 스며 나왔다. 인간들은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때 음식과 물건부터 챙긴다. 그게 신뢰의 언어니까. 김대리는 고맙다며 받았다. 그의 손에서 긴장이 조금 빠졌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철문 옆에 앉아 있었다. 첫날밤과 똑같은 자리였다. 지게차아저씨의 작업등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했다. 김부장이 처음으로 혼자서 야간 순찰을 도는 날이었다. 그의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왔다. 조심스러운 걸음이었지만, 며칠 전보다는 자연스러워졌다.
"복순아, 잘 있었어?" 그가 말했다. 목소리에 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코로 그의 손등을 밀었다. 허락의 신호였다. 그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이 부드러워졌다. 처음보다 훨씬.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온도를 배운다. 나도 그의 냄새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휘발유와 비누와 약간의 외로움. 그런데 외로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날 밤, 카톡방에 김부장이 첫 번째 사진을 올렸다. 내가 급식통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하트와 웃는 얼굴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의 반응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기쁨과 만족이 공기에 스며들었다.
며칠 뒤, 편의점피터가 웃으며 말했다. "복순이 인기가 대단해요. 근처 다른 단지에서도 문의 들어온다네요." 도시락 김밥과 행사 스티커 냄새에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인기는 좋지만, 나는 여전히 까다롭다. 아무나 허락하지 않는다. 냄새를 봐야 한다.
인턴닥터가 정기 검진을 왔다. "완전히 건강해요, 복순아. 스트레스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라텍스와 멘톨과 미세한 긴장. 하지만 긴장보다는 자신감이 더 강했다. 그는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당황했던 그 청년이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 의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봄 간호사가 내 털을 빗어주며 말했다. "복순이 덕분에 우리가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알코올 솜과 과일 젤리와 끝나지 않은 교대의 피곤. 하지만 피곤 속에 만족이 섞여 있었다. 좋은 피곤이었다. 의미 있는 피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핥았다. 고마움의 표시였다.
다큐유튜버가 편집이 끝난 영상을 보여줬다. "복순이와 열한 친구들" 첫 번째 편이었다. 조회수가 천 명을 넘었다고 했다. 카메라 가방과 편집실 먼지와 구독자 숫자에 대한 묘한 허기. 그 허기가 만족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즌2는 '열둘 친구들'로 제목 바꿔야겠어요." 그가 웃었다.
훈련짱이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줬다. "손 인사법이에요." 그는 손바닥을 내밀었고, 나는 앞발을 올려 살짝 건드렸다. 호루라기 금속과 쑥스러움 냄새는 여전했지만, 이제는 뿌듯함도 함께 났다. 우리는 서로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철문 앞에서 하늘을 보았다. 별이 많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도 별이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는 배가 고팠으니까. 지금은 배가 부르다. 사료가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많아서다. 지게차아저씨가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왔다. "복순아, 우리 꽤 멀리 왔네." 기름과 수프와 야간 근무. 변하지 않는 냄새 조합이지만, 이제는 추억의 냄새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작업등 불빛이 우리를 비췄다. 처음처럼, 하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김부장이 순찰을 마치고 와서 합류했다. "오늘 하루도 이상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확신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지만, 우리의 냄새에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꼬리를 한 번 더 흔들었다. 완전한 환영의 신호였다.
"복순아." 지게차아저씨가 불렀다. "너 덕분에 우리가 가족이 됐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틀렸다. 너희 덕분에 내가 가족이 됐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웃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인간들은 그걸 좋아한다. 그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갔다. 발걸음 소리가 계단에서 멀어졌다. 나는 혼자 남았지만 외롭지 않았다. 내일이면 또 그들이 올 것이다. 지게차아저씨의 컵라면과 기름 냄새, 돌봄 간호사의 알코올 솜 냄새, 편의점피터의 도시락 냄새. 그리고 이제는 김부장의 비누와 휘발유 냄새도. 열둘의 냄새가 내 곁을 채울 것이다.
나는 급식통 옆에 몸을 말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처럼.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달랐다. 빈 그릇이 아니라 채워진 그릇이 있었고, 차가운 바닥이 아니라 따뜻한 담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복순이는 복도 많지."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그래, 너희가 내 복이다. 그리고 이제는… 열둘."
바람이 불어와 철문을 살짝 흔들었다. 쇳소리는 여전했지만,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자장가 같았다. 내 세상의 경계를 알려주는 소리였다. 열둘의 냄새로 가득한, 내가 만든 완벽한 세상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도 그들의 냄새가 스며들 것이다. 기름과 알코올과 도시락과 비누가 어우러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따뜻한 그 냄새들, 그것이 바로 내 이름의 진짜 의미였다. 복순이. 복이 많은 개가 아니라, 복을 나누며 사는 개. 나는 복순이다.
멀리서 지게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나는 털 사이로 스며드는 그들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사랑은 냄새처럼 퍼져나간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멈출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