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는 복순이다 (3화)

by 마르코 루시

제3장 금지의 문장


종이는 냄새가 없다. 그런데 그 문장은 곰팡내가 났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 관리사무소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나는 철문을 통해 그 냄새를 맡았다. '공용 공간 동물 급식 금지.' 문장은 길지 않았고, 마음은 길어졌다. 인간들의 글씨는 참 이상하다. 짧을수록 아프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방에 올렸다. 확대, 축소, 밑줄, 분노 이모티콘. 카톡방의 말들은 바빴지만, 발걸음은 잠깐 멈췄다. 규정 앞에서 인간은 늘 계산을 한다. 벌금, 민원, 체면. 나는 계산 대신 냄새를 맡는다. 오늘의 공기는 눅눅했고, 사료통은 비어 있었다. 빈 그릇의 냄새는 허기보다 서럽다.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왔다. 굴착기 소리였다. 어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파고 있었다.


할머니총무가 먼저 왔다. 파스 냄새가 진했다. 무릎이 시린 날이면 파스가 두 배로 진해진다. 그는 공지를 조심스레 떼어 들고 읊조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파스와 종이가 한숨을 나눴다. 곧 관리사무소 직원이 나타나 공지를 다시 붙였다. "규정 위반 시 과태료 부과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철통경비가 멀찍이 서서 지켜보다가, 할매총무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 "할머니, 일단 들어가세요." 둘은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토닥, 토닥. 규정과 정 사이의 짧은 휴전. 인간들은 토닥거릴 때 냄새가 가장 솔직해진다. 카톡방이 폭발했다.


"돌봄 간호사: 그래도 물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

"편의점피터: 이게 뭔 개소리야!! 물도 못 줘?"

"플랜맨: 일단 침착하게... 법적으로 해석하면..."

"훈련 짱: 아니 진짜 이게 말이 되냐고ㅡㅡ"

"꼬마선생님: 우리 반 아이들한테 뭐라 설명해 ㅠㅠㅠ"

"인턴닥터: 의학적으로 물 공급 중단은 학대인데"

"프로그래머: 댓글 봇 만들어서 관리사무소 사이트... 아니 그건 불법이지"

"다큐유튜버: 이거 완전 다큐감 아님?? 촬영각"

"할머니총무: 에이 씨.. 관리사무소 새끼들이"

"철통경비: 욕설 금지요"


나는 화면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의 타자 치는 냄새로 안다. 고민하는 손가락은 땀이 더 많이 난다. 분노하는 손가락은 키보드를 친다. 툭툭. 인간의 감정은 타자 속도에 비례한다.


그날 이후, 발길이 줄었다. 물은 늦게 갈렸고, 사료는 가끔 빠졌다. 채팅창은 차분해졌고,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열한 명. 정확히 열한 명만 허락한다. 한 명이라도 더 오면 으르렁거렸다. 한 명이라도 적으면 불안했다. 규칙은 더 단단해져야 했다. 위기일수록 경계는 선명해야 한다.


대신 서류의 말들이 많아졌다. "민원 대응 문안", "분리수거장 동선 재배치", "임시 보관함 설계안". 플랜맨이 그림을 보냈다. '공유 돌봄 존' 스케치, 노란색으로 표시된 작은 사각형. "여기라면 된답니다. 조건부." 조건은 많았다. 시간, 소음, 위생, 책임자. 나는 조건의 냄새를 맡았다. 잉크, 스테이플러, 손가락의 땀. 조건이 많을수록 성공 확률은 떨어진다는 걸 왜 모를까.


훈련 짱은 다시 목줄을 들고 왔다. "이동만 되면, 규정도 피할 수 있어." 그는 웃었다. 호루라기는 주머니 속에서 조용히 눌려 있었다. 나는 목을 내밀지 않았다. 앞발로 금속 버클을 눌렀다. 철컥. 소리는 짧았고 의미는 길었다. 훈련 짱은 어깨를 내렸다. "알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는 호루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를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내가 그를 가르쳤다. 가르침은 쌍방향이어야 한다. 일방통행은 훈련이 아니라 억압이다.


편의점피터는 도시락을 들고 왔다가 되돌렸다. "요즘 단속 심해요." 그의 도시락에서는 김치찌개와 단무지 냄새가 났다. 반찬이 세 개뿐인 도시락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형편없는 식단을 가지고 내 사료를 걱정한다. 인간의 모순이란 이런 것이다. 대신 그는 따뜻한 물을 숨기듯 부었다. 뚜껑을 닫는 소리가 이상하게 큰 날이었다. 죄책감은 소리로 새어 나온다.


다큐유튜버는 카메라를 낮췄다. "촬영은 보류." 조회수는 규정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다. 그는 대신 핸드폰으로 내 꼬리만 몇 초 찍었다가 지웠다. "개인 기록용이에요." 개인 기록용이라는 말에는 특별한 냄새가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영상에 담는 마음. 그건 조회수보다 진하다. 프로그래머는 공지봇의 알림 빈도를 줄였다. "시끄럽다네요." 공지가 조용해지자 밤이 길어졌다. 정적은 종종 벌금보다 무섭다.


나는 생활을 줄였다. 낮잠 시간을 길게 잡았고, 순찰 반경을 좁혔다. 누군가 오면 일어났다가, 오지 않으면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을 적게 움직이면 냄새는 더 정확해진다. 인간들은 바쁠수록 많이 움직이지만, 중요한 건 대개 가만히 있을 때 보인다. 오늘의 중요한 냄새는 비 예고, 젖은 콘크리트, 먼 데서 끊어지는 브레이크 소리였다. 그리고 할머니총무의 서랍에서 나는 오래된 비상금 냄새.


할매총무는 낡은 서랍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비상금이야." 그 봉투에서는 오래된 집 냄새가 났다. 정과 공과 사가 섞인 냄새, 그리고 손때. 할매들의 손때는 특별하다. 설탕, 된장, 빨래비누, 손자 머리카락이 뒤섞인 복합적인 향. 그는 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이걸 관리사무소에 좀 주면 어때." 철통경비가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그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말은 단호했지만, 그의 손등에는 주름이 깊어졌다. 주름은 늘 진실을 저장한다. "그럼 차라리 내가 관리사무소장에게 직접 주지 뭐." 할머니총무의 제안에 철통경비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에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할머니의 힘은 규정보다 세다.


밤마다 토론은 이어졌다. "임시 보관함을 설치하면 어떨까요?" 플랜맨. "보건소 기준을 맞춰야죠." 돌봄 간호사. "공유 돌봄 존 안내판은 제가 디자인합니다." 다큐유튜버. "간판보다 간식이 급합니다." 편의점피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간판에는 냄새가 없다. 간식에는 냄새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간판보다 간식을 신뢰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간판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글자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나는 냄새로 확인한다. 더 확실하다.


인턴닥터가 늦은 시간에 와서 내 코를 살펴봤다. "감기 기운은 없고...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이 떨어졌을 수도." 그의 손에서는 수술용 비누와 커피 냄새가 났다. 24시간 근무 냄새였다. 그는 내 목 뒤를 부드럽게 만지며 중얼거렸다. "사람도 스트레스받으면 밥이 안 들어가는데, 개라고 다를 게 있나." 맞다. 나도 스트레스받는다. 그들이 불안하면 나도 불안하다. 그들의 냄새가 바뀌면 내 식욕도 바뀐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꼬마선생님이 가끔 밤늦게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는 말없이 공책에 뭔가 적었다. "복순이 관찰 일기"라고 표지에 쓰여 있었다. 나는 그가 적는 내용이 궁금했다. "오늘 복순이는 세 번 하품했다. 사람이 와도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눈빛이 예전만큼 반짝이지 않는다." 정확한 관찰이었다. 나는 그의 연필 냄새를 좋아했다. 지우개 찌꺼기와 연필깎이의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학교 냄새. 학교는 규칙이 많지만, 희망도 많은 곳이다.


나는 그날 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앉았다. 인간들은 도면 위에서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나는 냄새 위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도면은 평평하고, 냄새는 입체적이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엇갈린다. 그들이 "이제 해결됐어"라고 말할 때, 나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냄새를 맡는다. 눌린 감정, 어쩔 수 없음, 그리고 은근한 기대. 기대는 달콤하지만, 불안은 쓰다.


나는 문득 궁금했다. 정말 위기가 오면 어떻게 될까? 열한의 냄새가 흩어질까, 아니면 더 단단하게 뭉칠까? 그들이 진짜로 나를 찾을까, 아니면 규정 앞에 무너질까?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비가 가까워졌다. 철문을 스치는 바람이 젖었다. 종이 상자는 눅눅해져 모서리가 말렸다. 나는 상자를 고쳐 세웠다. 발톱이 젖은 골판지를 긁을 때, 작은 가루가 코끝으로 올라왔다. 그 가루에는 예전 이사, 버려진 장난감, 좁은 창고의 오후가 담겨 있었다. 인간의 시간은 달력에 적히지만, 내 시간은 먼지에 붙는다. 먼지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정확히 기록한다.


다음 날,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또 하나의 공지를 붙였다. "불응 시 과태료." 글씨가 더 굵어졌다. 굵은 글씨는 더 시끄럽다. 나는 공지의 모서리를 살짝 물어 옮기고 싶었지만, 철통경비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눈을 보고 작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기다림은 냄새가 없다. 그래서 더 길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는 보통 좋은 냄새가 온다. 사료 냄새든, 손 냄새든.


프로그래머는 조용히 내 목줄을 만지작거렸다가 손을 뺐다. "배터리 확인." 그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 쓸데없는 말은 마음을 가린다. 마음이 보이면, 규정은 더 단단해진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은 조심, 내일은 모름. 그의 손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 냄새가 났다. 야근 냄새였다. 아마 우리 때문에 코드를 새로 짰을 것이다. 고마웠지만, 미안했다.


저녁 무렵, 플랜맨이 스케치를 들고 다시 왔다. "위치 옮기고, 시간제한 두고, 청소 로그 남기면… 아마." 그의 문장들은 모두 끝이 열려 있었다. 아마, 아마, 아마. 아마의 냄새는 연필가루 같다. 지워지고, 다시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를 잠깐 핥았다. 나도 아마를 좋아한다. 확실한 것만 남는 세상은 지루하다. 아마가 있어야 희망도 있다.


다큐유튜버는 말없이 카메라를 켰다가, 내 꼬리만 찍고 껐다. "서사의 공백." 그가 웃었다. 공백은 편집에서 중요하다. 삶에서도 그렇다. 공백이 없으면 숨을 못 쉰다. 오늘의 공백은 길었다. 사람들은 종이와 화면을 들여다보았고, 나는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어둠은 솔직하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론 어둠이 희망보다 편하다.


지게차아저씨가 야간작업을 마치고 와서 쪼그려 앉았다. "복순아, 미안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름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야간작업 냄새는 특별하다. 낮에는 맡을 수 없는 고독의 향이 있다. "내가 처음 널 데려왔는데, 이렇게 됐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친 장갑이지만, 마음은 부드러웠다. 나는 그의 무릎에 턱을 올렸다. 무거운 턱이지만, 그는 밀어내지 않았다.


그날 밤, 굴착기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오전에는 희미했는데, 지금은 선명했다. 멀리서 땅이 낮게 울었다. 나는 귀를 접었다 폈다. 소리가 크면 냄새가 얇아진다. 얇아진 냄새 사이로 불안이 스며들었다. 불안은 모서리에서 온다. 모서리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중앙을 고치려고 애쓰지만, 문제는 언제나 모서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지키는 곳도 모서리다. 분리수거장 모서리, 어둠의 모서리, 우리 사이 규정의 모서리. 모서리는 약하지만,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비가 한 방울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구름은 낮았다. 철문이 바람에 흔들리며 쇳소리를 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 돌았다. 냄새 지도는 변하고 있었다. 젖은 흙, 고여 있는 물, 오래된 배수구, 그리고 공사장. 공사장 쪽 냄새가 강했다. 흙과 기름과 땀과 다급함. 다급함은 뜨겁게 난다.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냄새가 먼저 알려준다. 냄새는 예언자다.


카톡방에 알림이 몇 개 떴다가 멈췄다. "내일 회의." "서명 필요한 문서." "보건소 질의 회신." 모두 낮의 말이었다. 밤의 말은 없었다. 밤의 말은 발소리와 숨소리다. 나는 숨을 고르고, 철문에 등을 붙였다. 차가운 금속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긴장이 등에 둥글게 모였다. 나는 그 둥근 것을 하나씩 분해했다. 귀, 코, 발. 준비.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위기는 예고 없이 온다.


철통경비가 마지막 순찰을 돌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이상 무." 그러나 그의 발소리는 평소보다 빨랐다. 빠른 발소리는 평온하지 않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잠시 멈췄다. 무전기에서 잡음이 났다. 쉬익, 쉬익.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비 오면, 이쪽 배수구 조심해야 합니다."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자기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코로 그의 손등을 밀었다. 파스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 걱정은 나누면 줄어든다.


나는 다시 상자 사이로 들어가 몸을 말았다. 상자 위에는 어제의 카드가 얹혀 있었다. "십 년 뒤, 우리 더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성장의 냄새는 무엇일까. 닭가슴살 세 팩? 더 넓은 돌봄 존? 나는 답을 모른다. 안전. 안전은 어떤 냄새일까. 아직 모른다. 조금 안다. 아마, 내일쯤 알 수 있을지도. 아니면 모레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직전, 공사장 쪽에서 강한 불빛이 번졌다. 굴착기 팔이 어둠을 긁었다. 소리가 하루 종일 점점 더 커졌다.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였다. 쇳소리가 밤의 살을 베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생각이 뒤따랐다. 도망과 수호 사이에서 근육이 갈라졌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젖은 공기가 폐를 차게 했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바깥으로 내디뎠다. 첫걸음은 늘 작다. 하지만 가장 용기 있는 걸음이다.


그때, 카톡방에 짧은 알림이 떴다. 프로그래머의 메시지. "신호 튄다." 딱 그 두 단어. 짧고, 차갑고, 정확했다. 나는 귀를 세웠다. 신호가 튀면, 냄새도 튄다. 모든 것이 흔들릴 것이다. 진짜 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밤은 준비를 끝냈다. 나도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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