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규 Jan 26. 2021

10월의 날씨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우산 따위 있을 리 없지

오늘 분명히 비는 없다 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아님 나 혼자 이상하게 아픈지

나 어떡하지 어디로 가지

오늘 분명히 비는 없다 했는데

그랬는데


10cm <10월의 날씨> 中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친구가 혹시 노래 듣다가 운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저 노래를 말했고 그때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친구의 눈물곡과 이야기도 들었다.


방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때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자취방에서 매일 자소서를 쓰던 취준생일 때였다. 쓸 수 있는 모든 기업에 자소서를 제출하고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곳은 요구 내용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편집해 제출했다. 그러고 나면 저녁이 왔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퇴근할 시간. 나도 퇴근해서 좀 쉬고 싶은데 자소서를 썼다는 행위는 왠지 무언가를 생산한 건 아니라고 느껴져서 쉬어도 되나 하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좁은 방이 주는 기운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저녁의 기운 그리고 휴식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내적 기운은 나를 우울로 이끌었다. 그럴 때면 나는 밖으로 나와 산책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걷다 보면 우울은 금세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희망은 어느새 절망으로, 절망은 합리화로, 합리화는 우울로 바뀌었다.


그러다 이어폰에서 <오늘의 날씨>의 저 가사가 들렸다. 사람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나 혼자만 이상하게 아픈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 어떡하지. 어디로 가지. 오늘 분명히 비는 없다 했는데.”에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노래를 들으며 공터에 앉아 있었다. 웅크리고 있었다. 웅크린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방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 장면으로 들어가 그때의 나 옆에 앉았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오히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있다가 그 장면에서 빠져나왔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여러 명의 ‘그때의 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장면 속에 그때의 나는 각각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장면으로 들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기쁜 일에는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슬픈 일에는 같이 슬퍼하거나 위로해 줄 수 있다. 고민거리가 있는 장면에서는 같이 고민하거나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오늘은 그때의 나를 만나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가 왔다.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참다가 왔다. 위로해주고 싶은데 그건 지금의 내가 가진 마음이 그 장면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담담해졌을 때 가능할 것 같다. 그 장면을 지나온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열심히 살고 싶다. 열심히 살고 좋은 결과를 얻어서 그때의 나를 다시 찾아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꼭 안아주고 싶다. 꼭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넌 괜찮은 사람이라고.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