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피오나”

내가 나를 보는 모습

by 한희정

단톡방에 친구가 영상 하나를 공유했다.


몽타주 아티스트가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몽타주를 그리듯이 서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당신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당신의 턱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가장 큰 특징이 뭐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어오기 전에,

그곳에 온 사람 중에 누군가를 지정해 주면서 친해지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 몽타주 아티스트가 방금 그린 사람에 대해

다음에 들어온 사람에게 물어보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타인이 보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아주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친구가 보내준 그 영상을 보며 10년 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주변 사람들이 특히 나의 외모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를 해주면

내가 극도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뭘 이렇게까지 아니라고 고개를 젓고, 손사래를 치는 거지?’

‘좋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이유가 무엇이지?’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과

‘놀리는 거야?’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이 좀 지나치다 싶었다.


삶 속에서 잘 흘러가다가도 불편한 감정과 느낌이 들 때면,

나는 한 번은 짚어봐야 하는 문제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정과 느낌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 그날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이젠 그 부분을 볼 준비가 된 것이었다.


내 마음 안에서 나는 나를 ‘피오나’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봤다.
내가 보는 나는 <슈렉>에 나오는 ‘피오나’의 모습인 거였다.
나의 실제 모습과는 무관한 내 마음속의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진짜였던 거다.


그러니 사람들이 좋게 말해주는 것이

모두 거짓 같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던 것이 이해되었다.


약간의 슬픔과 애잔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난 나만의 자아를 내 안에 그려 넣어놓고 있었던 거다.

몽타주 아티스트가 질문을 통해 초상화를 그려준 거처럼.


결국 내 안에 나를 그렇게 보고 또 보면 결국 난 내 안에 그 모습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어렸을 땐 부모님의 이야기로, 성인이 돼서는 주변사람의 이야기들로 자신을 그려 넣지는 않았는지.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내가 크게 다르다면 한 번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본다면 어떨까?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체크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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