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 엄마다!

by 한희정

지난 토요일에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왔다.

토요일에 가겠노라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시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난 주치의로 통한다. 진단도 해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그런 나를 아빠는 돌팔이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내가 내려드린 진단과 처방을 잘 따르신다.


마사지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아프시거나 뻐근하시다는 부분을 만져드리고 풀어드리면 너무 좋다고 하신다.

최근 무릎이 좀 안 좋아지셔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좀 했었어도 허리 아프시다는 말씀은 잘 안 하시는데 무리를 하셨나라는 생각을 하며 가서 허리를 좀 만져드려야겠다고 하며 부모님 댁에 갔다.


도착하자마 엄마는, 아빠한테도 말하지 않으셨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엄마는 일흔이 넘으셨는데 엄마는 일을 하신다. 일하시다가 주차장에 물이 살짝 고여 있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미끄러지셔서 뒤로 크게 넘어지셨다고 했다.

다쳐서 일을 못 하게 되실까 봐, 그리고 어디 부러진 건 아닌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 확인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그날 퇴근하시는 길에 아빠 몰래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뼈에 금이 가거나 하는 이상은 없었고, 타박상이라고 했단다.


아빠한테 말하면 조심하지 않았다고 한 소리 할 거 같아서 말 안 하고 나 오면 말하려고 기다리셨다고 했다.

걸어 다니시는 건 크게 무리가 없으신데, 한 자세로 오래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시다가 일어나실 때 아프고 불편하다고 하셨다.

낙상은 교통사고와 같은 충격이 가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아파지는 경우들이 많다.

천만다행이었다. 뼈라도 부러지거나 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혹시라도 두 부녀가 나무랄까 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근데 넘어지고 나서 무릎이 펴졌다고 하시는 거다.

작년부터 무릎관절이 아프셔서 무릎을 곧게 펴거나, 구부리시는 게 힘드셨는데 넘어지면서 무릎을 안 다치게 하려고 구부리셨는데 그게 오히려 무릎을 펴지게 해 주고 아프지도 않다고 하시는 거다.

첨엔 허리가 아파서 무릎이 안 아픈가 했는데 당신이 걷다 보니 무릎이 펴져 있더란다.

바닥이 닳은 신발을 신고 왜 갔냐고 핀잔을 주다가 무릎이 펴졌다는 말에 참 어이없어 셋이 한참을 웃었다.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바르는 파스를 바르며 타박상은 시간이 지나야 낫는 거라고, 무리하지 마시라고, 교통사고나 다름없는 충격이라고 잔소리에 잔소리를 퍼부었다.

정말 천만다행,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발장을 열러 신발 바닥이 닳은 신발을 싹 다 골라 분리수거할 때 버리시라고 큰 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허리 보호대를 하나 주문해 드리고 왔다.


다음날 보호대 사이즈는 맞는지, 허리는 좀 어떠신지 안부 전화를 했다.

괜찮다고 이야기하시다가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번에 넘어질 때 사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이상해. 처음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오늘 아침에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싶더라고. 그러면서 왜 그렇게 난 악착같이 살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한참을 언제부터였나, 되짚어 보는데…. 그게 14살부터라는 걸 알게 됐어. 그때부터였네 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윗집 아랫집에서 들었으면 무슨 일 있나 그랬을 거야. 한참을 울었어. 14살에 내가 보호받지 못하고 날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던 거 같아. 항상 두렵고 무서웠거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살았구나 싶은 게…. 그렇게 도망치듯 아빠랑 결혼해서 이 모든 걸 지키려고 애썼구나. 지금은 그렇게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계속 그러고 있는다는 걸 보고 나니까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야. 한참을 울고 나니까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


엄마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멋졌다.

70살이 넘어서 14살의 자신을 만나 떠나보내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면서도 울먹이셨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말 못 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넌 내 말이 뭔지 알 거 같아서 말해보는 거야.


-엄마, 정말 대단하다.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거야. 엄마는 이제 열심히 살았고 여유가 있으니 그렇게 억척스럽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했던 건 그 14살의 아이가 한 거거든. 오늘 엄마가 알아봐 줘서 눈물로 풀린 거라, 마음이 훨씬 가볍고 편안할 거 같아. 너무 잘했다. 엄마.


크게 미끄러진 그 일을 이렇게 지혜로 가져가시다니….

역시 우리 엄마다. 역시 난 우리 엄마 딸이었다.


엄마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원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 모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엄마를 존경하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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