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by 한희정

#20

유찬이는 우리 집에 지내기로 결심한 듯했다. 여전히 캐리어를 옷장으로 쓰고 있었지만 이젠 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캐리어를 좀 치우는 게 어때?

-그건 싫어요. 저렇게 두고 쓰는 게 마음이 편해요.

-진짜 이상하네, 뭐 애착 캐리어야? 저 캐리어 들고 몇 번 왔다가 갔다 하더니 애착품이 되었나 보네. 그렇다면 내가 지켜줄게, 너의 애착 캐리어.

유찬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아빠한테는 엄마네서 쭉 지낼 거라고 말한 거야?

-알고 계실 거예요.

-혹시라도 마음 변하면 편하게 말해. 그 무엇보다도 네가 중요하니까. 눈치 보지 말고.

-아빠네서 지낼 수 없는 건 확실해요.


여전히 층간소음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윗집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소음은 새벽시간 알 수 없는 곳에서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예측 불가능한 소음 발생 시간과 알 수 없는 발생지가 유찬이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었다.


-엄마 윗집만 문제가 아니라 여기 아파트가 소음이 너무 많아요. 새벽에도 알 수 없는 소리들이 계속 들려요.

-유찬아, 새벽에는 자야지. 새벽은 조용하니까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거 아닐까? 안 그래도 예민한데 낮밤이 바뀌어서 더 그런 거 아닐까?

-새벽 4시쯤인가 누가 계속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서 밖에 나가서 봤거든요. 7층에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나가본 거예요.

-몇 시에 잤어?

-5시 좀 넘어서 잔 거 같아요.

매일매일 걱정이 쌓여간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유찬이는 고3 때부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충분히 쉬면 좋아질 거고 그래야만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놈의 조용한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쏘냐!! 저 똥고집을 어찌하랴! 나를 닮은 것을.

공부방은 집의 거실을 사용하고 있다. 2년 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식구가 없으니 넓은 거실에서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던 거다. 어차피 주말에만 아이들이 오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방 수업시간에 쥐 죽은 듯이 방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 편하게 왔다 갔다 해도 된다고 여러 번 말해도, 유찬이는 웬만하면 자신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싫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업하는 동안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낮에 수업 중에 윗집애들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고 나서 바로는 아니지만 이어서 두세 번 정도 ‘쾅!’ ‘쾅!’ 소리가 났다. 소리만 나면 유찬이 방을 쳐다보게 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낮에 들었던 ‘쾅!’ ‘쾅!’ 하는 소리가 또 들리는 거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유찬이 방으로 간다.


-유찬아, 지금 소리 들었어? 아까 낮에도 비슷한 소리가 난 거 같은데.

-그거 제가 친 거예요.

-뭐라고? 네가 친 거라고? 뭘로 어디를 친 거야?


전에 조립식 이불장을 살 때 들어있었던 고무망치가 있었는데 그걸 어디서 찾았는지 책장에서 그걸 가져와 보여주는 거다.


-낮에도 네가 한 거야?

-네.

-아니 그 망치로 어디를 치는 건데?


천장과 벽면이 만나는 모서리에서 벽 쪽에 5센티미터 정도 되는 부분에 망치를 가져다 댄다.

-아무 데나 치면 안돼요.

-그렇다고 윗집 네가 시끄러워서 쳤다는 걸 몰라. 거기 치면 어디서 나는지 아무도 몰라.

-그래서 치는 거예요. 그리고 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한 게 조금 나아져요.

-근데 그 망치 소리로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잖아. 그런 에너지는 너에게도 안 좋단 말이야.

자기 편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다. 한데 그렇게 치고 나면 터질 거 같은 마음이 나아진다니 어찌해야 할지 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21

아파트 구조상 벽을 치면 모든 집에서 자신의 윗집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20년 전 내가 직접 겪어봤기에 안다. 서울에서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 때, 아랫집 대학생 총각이 혼자 살았었는데 이사를 한 당일 저녁부터 시끄럽다고 올라왔었다.

그땐 아이도 없었고, 낮에는 집에 사람도 없었는데 층간소음으로 몇 번 올라왔다가 애들 아빠가 ‘아니 걸어 다니지도 못하면 어쩌라는 겁니까? 층간소음이 그 정도로 힘들면 꼭대기층에 살던가.’ 라며 무섭게 이야기하고 나서는 더 이상 올라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번씩 큰 해머로 아파트 벽을 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속적으로 쿵쿵 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낮에는 그려려니 하곤 했었다.

그러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새벽 3시쯤 사달이 났다. 계속 쿵~!,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 것이다. 여러 집에서 복도로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우리 집 아랫집에서 났다. 경비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자 소리가 멈추고, 계속 나오라고 불렀으나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 집을 제외한 모든 집에서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동안 그 총각이 벽을 쳐왔다는 것을 경비아저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을 견양한 벽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날까 봐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아들이 벽을 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가 갈 텐데 라는 마음과 사실 우리는 피해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자가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음이 들리면 내 가슴이 철렁한다. 유찬이가 망치로 벽을 칠까 봐 가슴이 조여왔다. ‘제발 아무 소리도 들리지 말아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수업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는데 집중이 어려울 정도로 귀가 열려서는 소음에 민감해져 있고, 소리라도 나면 가슴이 조여 오는 증상이 생겼다. 그렇게 우울과 불안은 전염되고 있었다. 유찬이에게 ‘너 때문에 엄마까지 힘들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의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 모자는 각자의 감정을 처리해야 한다. 같은 상황 속에서 모든 엄마가 나처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소리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생각을 찾아야 한다.

내가 찾은 생각은 유찬이의 망치로 인해 누군가와 분란이 생겼을 때 내가 제대로 아이 편에서 대처하지 못할까 봐라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할 수 없었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잘 처리하지 못할까 봐라는 생각에 층간소음과 망치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조여 오고 불안도가 치솟았을 것이다. 사실 내가 찾아낸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 알 길은 없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도 내가 잘 처리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나에게 말해준다. 그러면 조금 안정을 찾게 되고 그 상태에서는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가 수월해진다. “유찬아, 꼭 그렇게 망치로 대응을 해야겠어? 엄마 그 망치로 벽치는 소리 듣는 게 너무 힘들다.” 물론 이런 방법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기에 꾸준히 연습하고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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