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by 한희정

***
유찬이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최대한 담담한 척 물었다.


-집을 나간 가는 게 무슨 말이야? 다시 아빠네로 간다는 거야?
-아니요. 아빠네는 이젠 절대 아니고요, 엄마네도 아닌 거 같아요.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감정적으로 벽을 쳤고 구멍이 뚫리자 유찬이는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참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자신을 위한 조용한 곳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었단다.


하지만, 유찬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소음 없이 조용한 곳이 없단다. 지금 이곳이 가장 조용한 곳이란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지금은 그 말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네가 많이 힘든 거였구나. 네가 생각하는 조용한 곳이 어딘데?
-이제 찾아봐야죠. 옥탑방이나 꼭대기층, 아니면 시골처럼 사람이 좀 없는 곳이든. 일단 지금은 엄마네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 알아보자. 엄마도 공부방이 생각처럼 잘 안 돼서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엄마가 아직은 능력이 안 돼서 할머니한테 말씀드려서 이 집 전세 주고 한 2년 다른 데서 살다 보면 또 방법이 생기겠지.
-엄마하고 같이 안 가요. 혼자 나갈 거예요.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할 거다라는 건 없어요. 그냥 아빠네도 엄마네도 아니다는 것만 확실하다는 거예요.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죠.
-알겠어. 와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오면서 엄마 별생각을 다 했네. 엄마 좀 씻고 저녁 준비할게.


뭐 그렇게까지 엄마랑은 같이 안 간다고 하는지 원.
별일 아닌 듯 대응하긴 했지만, 지금 저 상태로는 독립하면 안 된다. 내가 그렇게 혼자 오랫동안 있어봐서 안다. 이혼하고 혼자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도움이 필요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아들을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드러난 문제는 금전적인 문제가 큰 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일 수 있다. 단지 엄마네도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는 그 말뿐이었는데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거라고 했을 뿐인데, 내 머릿속은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24
현주네 방갈로에서 하루 자보면 시골이라는 곳에 대한 느낌을 알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물론 현주네 방갈로가 비어있어야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유찬이에게 엄마랑 바람도 쐴 겸 방갈로에 가보자고 제안해 보고 싶어졌다. 그전에 현주네 방갈로가 비어있는 날짜를 먼저 물어봤다. 이미 유찬이가 요즘 소음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 의도를 전했고, 다행히 앞으로 더워지니까 방갈로에 스케줄이 크게 없다고 했다.


똑똑똑.
-유찬아, 뭐 해?
-아무것도 안 해요.
-엄마랑 현주이모네 방갈로 가서 하루 자고 오자.
-엄마 며칠 전에 다녀오셨잖아요, 또 가게요?
-거기 시골이야.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방갈로 앞에 도로 하나 있고, 건너편에 단독주택 하나 있고. 엄마랑 바람 쐴 겸 가서 시골의 조용함을 좀 경험해 보고 오면 제가 결정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어? 이번 주 주말에 방갈로 빈다고 하더라고.


평소 같으면 귀찮다고 싫다고 할 텐데,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알겠어요. 빔 가져가서 영화도 보죠.
-오케이. 현주한테 이번 주에 간다고 말해놓을게~. 앗싸.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물론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왕 가는 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시골의 고요함과 한적함이 좋다면 또 고려해 볼 수도 있는 일이 테니 내 생각만 고집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좋은 기회를 만든 것이다.


***
토요일 아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1박 2일, 챙길 것은 별로 없었다. 방갈로에서 현주네까지 3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그곳에 마트가 여러 개 있어서 장을 미리 봐서 갈 필요는 없다. 접시나 수저, 버너, 주방도구등 식사 할 때 필요한 것들은 이미 방갈로에 있다고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내가 너무나 좋아라 하는 불멍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좀 어려울 거 같다. 비가 그쳐도 장작이 젖어 있을 테니 말이다.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계획으로 8시쯤 출발하자고 어제저녁에 이야기하고 잤다. 그나마 8시쯤 출발하자고 해서 9시 전에는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라 운전이 힘들지는 않다. 불멍은 못해도 저녁에는 비가 그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계획대로 12시쯤 도착했다. 현주는 남편과 일찍부터 방갈로에 와서 전기와 쓰레기봉투, 화장지등을 준비해 주었다. 도착했다는 톡을 보내고, 유찬이와 짐을 가지고 방갈로에 들어갔다.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고 구비해 놓은 것이기에 이쁘진 않지만 실용적이고, 앞이 탁 트인 통유리는 언제 봐도 일품이다.
통유리 너머로 현주가 보인다. 20살이 된 유찬이를 보러 온 것이다.


-어머, 유찬아 안녕.
-안녕하세요.
-세상에, 이렇게 컸니? 키도 크고 멋진데.
-감사합니다.
-좋지는 않지만 엄마랑 편하게 있다가 가.
-아니에요, 너무 좋아요.
-석희야, 점심은 어쩔 거야? 오면서 먹었나?
-아니야, 지난주에 너랑 먹은 두부전골 맛있더라. 그거 먹고 들어오면서 장 봐오려고.
-그려. 비가 와서 좀 아쉽네. 너 좋아라 하는 불멍 못하게 생겼구먼.
-할 수 없지 뭐. 진짜 고마워 현주야.
-별말을 다 한다. 나 갈게
-안녕히 가세요.


정리하던 것을 마무리하고 두부전골을 먹으러 시장 쪽으로 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조금은 어두운 듯한 오후, 뜨끈한 두부전골은 안성맞춤이었다. 유찬이는 공깃밥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었다. 난 커피 생각이 났지만, 장을 먼저 보고 들어가는 길에 테이크아웃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통유리를 통해 비 오는 것을 보며 먹는 커피라, 낭만적이지 않은가.


대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된장찌개와 소고기를 먹자고 유찬이가 제안한다. 소고기를 메인으로 하고 돼지고기를 조금 더 샀다. 버섯과 상추도 샀다. 내가 마실 맥주 6캔, 유찬이가 마실 탄산음료. 같이 한잔 하면 좋으련만 술이 맛이 없어서 안 먹고 싶단다. 영화 볼 때 먹을 과자들, 내일 아침에 먹을 라면도 샀다. 방갈로에도 친구들하고 해 먹고 남은 양념들이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될 거 같았다. 계산을 마치고 잊지 않고 커피를 사서 차에 오른다. 빗줄기가 강해졌다.


어제 새벽에 잔 데다가 아침에 일찍 나와서 지금까지 돌아다녀서 너무 피곤하다며 유찬이는 1시간만 자겠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고요함 속에 마침 내리는 빗소리에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갖는 여유다. 잠든 유찬이를 쳐다본다. 갓 성인 된 아들. 언제 저렇게 컸을까? 매주 눈물로 헤어지던, 끝날 거 같지 않던 1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이곳에 있다. 무엇을 얼마나 눌러왔을까? 이제는 더 이상 눌러지지가 않아서 여기저기 삐져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난 항상 준비하고 있었다. 어릴 때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지만, 사춘기가 오고 커가면서 나를 원망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자식은 부모를 미워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나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님이라도 할지라도.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엄마가 원망스럽거나 미워질 수도 있거든. 그래도 괜찮아. 그럴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해 주곤 했다. 그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거고 그렇게 왔다가 가기도 하고 다시 오기도 하고 그런 바람 같은 거다.
어찌 유찬이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을까? 난 이혼한 부모밑에서 자라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혼자 끙끙대는 아이를 볼 때면, 그냥 부모를 원망하고 화를 내면 나아질 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혼한 부모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재혼한 아빠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아이로 보일 때 내 가슴이 더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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