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by 한희정

#26
현주네 다녀오고 유찬이가 혼자서 지내는 것에 대한 나의 반대는 확고했다. 내가 강하게 이야기했으니 유찬이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고 나는 왜 바보 같이 믿었을까?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내 말에 동의한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 거였다. 유찬이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지내면서 정신적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일관적인 주장을 했다.


그 정도로 알아듣게 말하고 간접경험을 했으면 마음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 안된다고 하는 건데,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하니 대화를 할 때마다 자꾸 언성이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으면 모른다고만 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으로 갈 건데?
-몰라요.
-월세는 1년 계약이야. 혹시라도 생각지도 않은 소음이 발생해서 지내기 어렵게 돼도 1년은 월세를 내야 할 수도 있는 거야. 시골에 전원주택 같은 곳에서 살지 않는 이상 원룸이나 빌라, 아파트등은 소음이 없을 수가 없어.
-시골은 아닌 거 같아요. 그리고 소음이 없는 곳으로 알아봐야죠. 부동산에 물어보면 되지 않겠어요?
-부동산에서 그걸 어떻게 알아? 조용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조용하다고 하겠지. 그걸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럼 템플스테이를 다녀와 보는 건 어때?
-싫어요. 그리고 엄마 조용한 곳에서 혼자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지 이제 2주 정도밖에 안 됐어요. 이제부터 저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에요. 당장 나가겠다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몰아붙여요 엄마.


유찬이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유찬이가 내일이라도 당장 집을 나가겠다고 한 거처럼 내가 행동했다는 것이 자각됐다. 거처를 옮긴다는 것이 시간이 걸리고 준비할 것이 많은데 머릿속 생각으로 유찬이를 몇 번이나 독립시키며 시물레이션을 돌리다 보니 나에게는 당장 일어날 현실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쩌면 한편으로 내 곁에 두고 싶은 이유를 찾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골이나 전원주택이 아니면 층간소음이나 알 수 없는 주택지의 소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겉으로만 보이는 조건으로 덥석 계약해서는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는 문제인 거다. 그런 말들이 유찬이에게는 나가지 말라는 말로만 들리는 모양이다. 무조건 반대를 할 게 아니라 유찬이 스스로 장소만 바꾸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유찬아, 엄마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한달살이를 해보는 거 어때? 요즘 제주도나 지방 쪽에 한달살이들 많이 하잖아. 혼자 한 달 정도 지내고 나면 뭔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나쁘지 않은데요.
-혹시 너 생각해 본 지역이 있어?
-아니요.
-그럼 생각해 봐. 그리고 검색도 좀 해보고. 엄마도 친구들이나 주변에 좀 알아볼게.


생각보다 한 달 살기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경험을 쓴 블로그 글들은 검색이 되었지만, 장소나 가격등의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사실 가고자 하는 지역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거기서부터 쉽지 않았다. 지방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한 달 살기 하려고 하면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검색하다가 거리며 지역이 괜찮으면 근처 부동산을 검색해서 문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문의하고 알아볼수록 굳이 그 돈을 투자해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혼자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것이라면 공간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유찬이는 요양차원의 공간을 찾는 거다. 쉬기 위한 장소. 지친 정신과 육체를 회복할 공간. 엄마인 나 조차도 이 부분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빠하고 이야기해 봤어?
-엄마가 한 달 살기 이야기해서 아빠한테 말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알아보라고 하긴 하셨어요.
-그래? 엄마가 검색한 거 몇 군데 톡으로 보냈잖아, 확인해 봤어?
-네, 근데 전 멀리로 가고 싶지 않기도 해서요. 전 옥탑이나 원룸 꼭대기층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유찬아, 그러면 여기랑 별반 다르지가 않아. 원룸은 벽이 얇아서 옆집 소리가 잘 드리기도 해. 그리고 엄마가 너 독립하는데 돈을 해 줄 여력이 안돼.
-아빠가 알아보라고 하셨으니까 도와주신다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넌 뭘 좀 알아본 거야?


자신이 설치한 앱을 보여주며 알아본 원룸을 보여줬다. 대부분 꼭대기층으로 알아봤고, 보증금 없이 한 달만 지낼 수 있는 곳도 여러 개 보였다. 일단 월세 계약이 아닌 곳이라면 경험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사진만으로는 몰라.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지. 한 달 정도 살아보고 결정해 봐.
-한 달만 살아보는 건 별로예요.
-엄마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하지? 계약하면 그동안은 맘에 안 들어도 월세내야 하는 거야.
-기억해요.
-그런데도 그렇게 하고 싶어?
-네, 엄마는 여기 둘 중에 어디가 더 나아요?
-이거 두 개 선택한 기준이 뭐야?
-가격하고 꼭대기층이요.


하나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다른 하나는 보증금 35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이었다.


-가봐야 알겠지만, 둘 다 나쁘지 않은데 엄마라면 500에 40을 선택할 거 같아.
-알겠어요. 아빠도 알아보라고 했으니까 이야기해 볼게요.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겠다고 해서 방을 나왔다.


난 지금 이 상황이 고3 때 반이동을 했던 때랑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때 이미 반이동이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패턴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안타깝다.


유찬이 방에서 정확히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통화를 하는 듯하더니, “뭐야 진짜!”라는 소리가 들린다. 놀래서 문을 열었다.


-왜 그래 갑자기?
-아니, 알아보라고 한 건 해주겠다는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아빠가 집 구해줄라고 알아보라고 한 게 아니래요. 그냥 좋은 방법인 거 같아서 말한 거래요.
아니 나는 아빠가 알아보라고 해서 사실 그거 믿고 며칠 동안 알아본 건데, 갑자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잖아요.

‘너의 아빠 왜 그런다니 정말! 해줄 것도 아니면서 왜 알아보라고 한 거야 진짜! 아니 자기 때문에 지금 애가 집을 나와서는 힘들다는데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장난해!!!’라고 나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꿀꺽 삼켰다.
그렇다고 아빠를 이해시킬 마음도 같이 화를 낼 마음도 없었다.


그날 이후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하지 않았다. 막상 유찬이 계획대로 독립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런 아들을 보는 내 마음이 짠했다. 반대할 때는 언제고 나도 참 웃기는 인간이다 싶었다.



#27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지현언니랑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유찬이에게 전화가 온다. 확인할 게 있어서 아빠네 갔다 와야 할거 같은데 언제쯤 오는지 물었다. 내 차로 다녀오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거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시간 좀 걸린다고 했더니 그럼 버스를 타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뭘 확인하러 가는지 물으니 다녀와서 이야기해 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지현언니랑 같이 있기도 하고 물어봐야 친절하게 대답을 해줄 것도 아니니 쿨 한 척 마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내가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유찬이가 왔다. 신발을 벗고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보자마자 “뭐 확인하러 다녀온 건데?”며 참고 있던 숨을 내뱉듯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저 옷 갈아입고 말씀드릴게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사이 늦은 저녁이지만 커피 한잔을 내린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아니 뭐 그렇게 급한 일이라고 버스까지 타고 다녀온 거야?
-생각이 난 김에 확인하고 오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다녀온 거예요.
-그래서 뭔데?
-집에 현금이 조금 있거든요. 정확하게 얼마인지 몰라서 그거 얼마인지 확인하러 다녀온 거예요.
-내일 가서 확인해도 되는걸 굳이 이 밤에 다녀온 거야? 근데 뭐 돈 필요한 일이 있어?
-며칠 전에 아빠하고 통화하고 나서 사실 아빠한테 화가 나더라고요. 아빠 믿고 알아본 거였는데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까요. 근데 지금 나에게 회복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확고했어요. 검색해 본 결과 보증금 500만 원 정도의 집이 가장 알맞다는 판단을 했고, 최소 500만 원이면 집을 구할 수 있겠더라고요. 통장을 확인해 보니 200만 원 정도 있더라고요. 집에도 돈이 좀 있는데 그 금액을 알아야 정확히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이 되니까 당장 확인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오히려 버스 타고 다녀오면서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더 좋긴 했어요.
-현금이 얼마 있는데?
-100만 원 정도 되더라고요. 챙겨서 왔어요. 내일 은행 가서 입금할 거예요.


어이가 없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정도의 집들은 이 집보다 소음이 많으면 더 많았지 유찬이가 생각하는 조용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유찬이의 독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 떠나겠다는 무모함으로 보였다. 지금 유찬이 상태라면 산속에 새들이 지저 궈도 시끄럽다고 할판이다. 그 정도로 예민하다는 걸 본인만 모르는 거 같았다. 제발 유찬이가 마음을 바꾸기를, 이곳에서 나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내 마음을 바꾸기를 원하는 듯 유찬이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차라리 나를 원망하고 아빠를 원망했으면 좋겠다. 당신들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거라고 소리라도 치면 속이 시원해지지 않을까? 혹시라도 부모를 이해하려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 눌러 예민해진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봐야 300만 원이잖아. 최소 500만 원이 필요하다며? 월세는 또 어쩌고? 엄마는 너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이라 도와주지 않을 거야.
-알아요. 저도 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300만 원 더 모아서 600만 원 되면 나갈 거예요. 3~4개월 아르바이트하면 모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나가고 싶어?
-네
-아르바이트 구하고 일하면서 돈 갚겠다고 아빠한테 300만 원 빌려달라고 해. 그러면 조금 일찍 나갈 수 있잖아.
-싫어요. 3~4개월 일해서 모아서 나갈 거예요.


이럴 때 어른들이 ‘꿈도 야무지다’라고 하시는 건가 보다.
일단 3~4개월의 시간이 생겼다. 밤낮이 바뀌어서는 하루 종일 방에만 있던 놈이었다. 어떻게든 방에서 꺼내보려고 했으나 꼼짝도 안 하려고 하던 놈이 독립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나오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몸을 움직이고 돈을 벌다 보면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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