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난 뭐든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래 서였나 보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성격이 급하다고 했던 것이.
처음 유찬이가 엄마집에서 지내는 것도 아닌 거 같다며 독립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난 당장에 나가겠다는 것으로 인식했었다. 그러다 보니 유찬이와 충돌이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바로 유찬이가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실행에 옮길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말은 해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유찬이가 답답하다. 참다가 참다가 ‘아르바이트한다면서?’라고 묻기라도 하면 짜증을 내며 ‘제가 알아서 할게요.’란다.
“알아서 할게요.”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정말 듣기 싫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
-엄마, 저 내일 친구랑 쿠팡 물류센터 야간 아르바이트 가요.
-쿠팡? 엄마가 전에 한번 해봐라 해봐라 할 때는 듣는 척도 안 하더니.
-그리고 내일 다이소에서 아르바이트 시작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노브랜드버거 면접 있어요.
-뭐야 갑자기?
-계속 알아보고는 있었는데 지원서 넣은 곳들에서 연락이 안 오기도 했고 할 만 거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
-쿠팡 다녀오고 바로 다이소 간다고?
-다이소 저녁 7시~9시라 괜찮아요.
쿠팡 물류센터 야간근무는 저녁 6시~다음날 새벽 4시까지 근무다. 협력교사는 방학 때 수입이 없다. 그래서 몇 번 쿠팡 알바를 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막상 아들이 한다고 하니 힘들 텐데 싶었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나 보다. 힘든 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나를 온실 속에 화초로 키우셨지만 삶을 사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의 실수와 실패의 경험은 아이에게 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유찬이에게도 첫 아르바이트의 경험이지만 나에게도 첫 경험이다. 일은 유찬이가 하는데 나도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새벽 4시면 일을 마치고 내 경험상 집에 오면 5시 반쯤 되었다.
띠띠띠띠
눈이 번쩍 뜨였다.
-왔어? 고생했네. 힘들었지?
-엄마는 이거 어떻게 했어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저 좀 씻고 올게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모험담을 이야기하듯 생생하게 말한다. 오전에 약속이 있어서 잠을 좀 자야 한다고 말을 할 틈이 없다. 나도 해봤던 일이라 알아들으니 더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다시는 쿠팡 아르바이트를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엄마도 다시는 하지 말란다.
-엄마 11시에 약속 있어서 좀 자야 해. 너도 저녁에 다이소 아르바이트 간다면서? 다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고 이제 잡시다.
겨우 불을 끄고 누웠지만 유찬이의 모험담은 계속되었다.
***
-엄마? 엄마?
대답소리가 없는 거 보니 잠이 드셨나 보다. 피곤하긴 하지만 아직 잠이 오지는 않는다.
친구 놈이 같이 가자고 해서 쿠팡 아르바이트를 신청한 거였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연락이 왔다. 순간 나도 가지 말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엄마한테 큰소리친 것도 있고 방에 있어봐야 생각만 많아지니 다녀오자 싶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8시간 중에 2시간은 교육을 받았다. 지정해 준 사물함 열쇠 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할 수가 없었다. 교육은 성교육, 안정교육, 체험교육으로 실시되었다. 10시와 11시 중에 각자 파트로 가면 정해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입고파트를 신청했었고 그중에 물건을 진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전체 교육을 받고 나면 다시 지원한 파트에 가서 또 교육을 받는다. 입고파트는 바코드를 찍는 기계 교육과 진열하는 방식에 대한 간단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단순한 업무이다 보니 어렵지는 않았지만 저녁식사 시간까지 쉬는 시간은 없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핸드폰을 소지할 수도 없다. 에어컨도 없이 중간중간 설치된 선풍기만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여느 도서관처럼 생긴 통로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넣어 둘 공간을 찾아 진열한다. 아마 엄마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 거 같았다. 언젠가 쿠팡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노라며 이야기하셨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저녁은 11시에 먹으러 가겠노라 손을 들었다. 6시~8시까지 신입교육 듣고 8시~9시까지 입고파트 교육 듣고 고작 2시간 하고 나니 밥을 먹으러 가게 돼서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녁 먹고 새벽 4시까지의 시간이 정말 안 갔다. 이 아르바이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드디어 야간작업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온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와 오른쪽 인도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가다 보니 그 길의 끝에 집으로 가는 셔틀이 있었다. 많은 셔틀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길고 긴 밤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곳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부터는 다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월~토 7시~9시, 물품정리라고 되어 있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긴바지를 꼭 입고 오라고는 했다.
이제 갓 졸업한 고졸이 당장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해봐야 뻔했다. 그리고 난 급했다. 무슨 일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빨리 300만 원을 모아서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아 졌다. 여러 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대부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군데 연락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 엄마에게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끔 너무 앞서가는 엄마가 버겁다. 엄마는 행동도 생각도 나보다 몇 배는 빠른 거 같다.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에 노브랜드버거 면접이 있다는 말을 아직 안 했다. 오늘 다이소 다녀오고 나서 이야기해야겠다.
창밖이 밝아온다. 이제는 정말 눈을 좀 붙여야 할거 같다.
#29
유찬이는 첫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난 유찬이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경험하고 또래들과의 관계를 경험해 보고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바라서이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전할 때면 그런 경험이 꼭 대학을 가야지만 가능한 거냐며 반박하곤 한다. 대학을 간다고 해서 더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마음을 바꿨으면 하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뭐 그렇다고 내 말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마음 한편에 나도 모르게 기대가 피어나는 듯하다. 일을 하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 거 같다고 하면 좋겠다는 기대, 몸을 움직이다 보니 예민함이 줄어서 집을 나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이제 겨우 한발 내디딘 것뿐인데, 머리를 흔들어 기대를 털어버린다. 일차원적인 방법이지만 효과가 꽤 좋다.
점심 약속을 다녀왔는데도 유찬이는 아직 자고 있다.
식탁이랑 싱크대에 먹은 흔적이 없는 걸 봐서는 내리 자고 있는 모양이다.
‘배고플 텐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이 싫었는데, 엄마는 원래 그런 거였나 보다. 어이없이 웃으며 간단히 장 봐온 것을 정리하는데 부스스한 모습으로 유찬이가 나온다.
-엄마... 저 일할 때 입을 긴바지 사야 돼요.
-이렇게 더운데 웬 긴바지?
-자세히는 저도 모르겠어요. 긴바지는 청바지뿐이라서 막 입을 바지 사야 할거 같아요.
-오늘 가보면 알겠지 뭐. 밥은 먹었어?
-아니요, 이제 먹어야죠. 밥 먹고 바지 사러 같이 가주세요.
-적당한 게 있어야 할 텐데, 알겠어. 씻고 나와 밥 차릴 테니까.
오늘은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는 날이라 여유가 있는 날이다. 난 이미 점심을 먹고 온 터라 유찬 이것만 간단히 차렸고 금방 먹고 집 앞 아웃렛으로 바지를 사러 갔다. 한때는 옷 하나 사는데도 몇 시간씩 투자하던 녀석이었는데 오래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며 빠르게 옷들을 스캔했다. 왠지 느낌상 두벌은 있어야 할거 같기도 하고 마침 가격도 저렴해서 하나 더 사자고 했는데 그냥 하나만 사겠다고 했다. 그 일을 계속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필요하면 더 사겠다고 했다.
-아빠 카드로 할까요?
-아니야. 엄마가 사줄게. 너의 첫 알바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하하
고등학생이 되면서 유찬이는 아빠 카드를 가지고 다녔다. 아마도 아빠가 급하게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쓰라고 준 모양이다. 워낙 유찬이가 돈을 허투루 쓰는 아이가 아니니, 아마도 그래서 준거였을 거다. 가끔 주말에 쇼핑하다가 필요한 옷이나 물품을 사야 할 때면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사곤 했었다. 하지만 집을 나오고 나서부터는 아빠카드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다이소는 집에서 가까우면서 멀다고 해야 할까? 걷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고, 버스는 오히려 돌아서 가는 노선이라 참 애매한 거리다. 오늘은 첫날이기도 하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굳이 거절하지 않고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차로는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저녁을 먹고 6시 50분쯤 다이소 앞에 내려줬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픽업까지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몇 시까지 오면 될까요?
-9시까지 오시면 되지 않을까요?
-알겠어. 너무 긴장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잘하고 와.
유찬이를 내려주고 오면서 ‘너무 긴장하지 말고’라고 말한 것이 꼭 ‘엄마 긴장된다’라고 고백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큰 아이의 첫 경험들은 나에게도 첫 경험이다. 그래서 같이 잘 모른다. 우리 엄마처럼 그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고백했나 보다.
집에 와서 저녁 먹은 설거지 하고 정리 좀 하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다시 유찬이를 데리러 간다. 다이소까지 가기 전, 안경점 앞에 유찬이가 서 있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인도에 붙여서 세우고 전화를 하려는 찰나 유찬이가 내 차를 발견하고 걸어온다.
-어휴, 땀냄새. 뭔 땀을 이렇게 흘렀어?
-겁나 힘들어요 엄마. 아니 그게, 전기공사를 한 대요 한 달 동안. 그래서 엘리베이터도 안되고 매장에 에어컨도 안된다는 거예요.
-말이 돼? 에어컨이 안되는데 손님들이 있어?
-손님이 문제가 아니라,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안된다니까요.
-그니까 네가 하는 일이 뭔데?
-7시쯤 트럭으로 물품이 오는데요. 1층 주차장에서 물품 박스를 내려서 지하 1층으로 옮기고 진열장소까지 박스를 가져다 놓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물건 내리고 옮길 때 긁히고 다칠까 봐 긴바지 입고 오라고 한 거더라고요. 박스 옮기는 카트가 있는데 거기에 잔득실 어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서 매장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건데, 전기공사로 그걸 못하게 된 거죠. 어제부터 그랬대요. 대박 아니에요?
-아니 그럼 어떻게 한 거야? 그걸 일일이 다 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했다는 거야?
-그건 아니고 계단 위에 판자를 놓고 미끄럼틀처럼 박스를 내려가게 해서 하기는 했는데 물품이 너무 많고 너무 더워요.
-그래서 이렇게 땀이 많이 난 거구먼.
차에 타는 순간 땀냄새가 진동을 했다. 억울한 듯 말을 하는데 사실 나는 5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저녁을 먹은 지 3시간도 안 됐는데 배가 고프단다. 방금 설거지해 놓고 왔는데 이게 뭔 일인지 원.
-참, 그리고 엄마 저 다음 주 월요일에 노브랜드버거 면접가요.
-노브랜드버거? 햄버거집? 햄버거 만드는 거야? 아니 그렇게 빨리 나가고 싶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줄 았더니 갑자기 이게 뭔 일이야! 어디에 있는 노브랜드버거야?
-몇 개를 물어보는 거예요? 서평역 근처요.
-멀지는 않네. 잘도 구한다. 나는 아무리 아르바이트자리를 찾아도 할 일이 없더구먼, 넌 젊어서 좋겠다.
-말이 왜 그리로 튀어요? 하게 됐다는 게 아니고 면접 오라고 해서 가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쿠팡부터 해서 갑자기 휘몰아쳐서 그러니까 엄마도 정신이 없네.
정신은 없지만 좋은 소식이다. 독립을 하겠다는 목표는 맘에 들지는 않지만 유찬이를 움직이게 했으니 그럼 됐다. 이 움직임이 단연코 유찬이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말해주는 길이 더 좋다는 보장도 없다. 각 자의 길일 때 옳은 길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