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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축제를 건너는 일

김주환 작가의 북한강갤러리 전시를 보고

by 두유진

5월 연휴, 여느 해와는 조금 다른 봄바람이 불었다. 따스한 듯 차가웠고, 설레는 듯 쓸쓸했다. 그 묘한 온도의 바람을 따라 발걸음은 북한강갤러리로 향했다. 이름만으로도 잔잔한 물결이 밀려오는 곳. 그곳에서 ‘삶’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일정표에 표시를 했다.


김주환 작가.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강동미술협회 회원으로 함께 참여했던 강동아트센터 <한강의 흐름전>에서 자주 뵈었던 분이다.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도 이상하게도 그의 그림 앞에서는 늘 발걸음이 멈췄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화면 가득 펼쳐진 작은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와 감정이 눈에,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더 궁금했다. ‘삶–祝祭(Life-Festival)’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삶을 ‘축제’라 이름 붙인 그의 시선은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을까. 기대와 설렘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그의 작품은 늘 작고 소박한 인간 군상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캔버스 속 사람들은 일하고, 뛰고, 기다리고, 손을 흔들고, 기도하고, 이별하고, 또 만난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안아주고 있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점과 선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많은 서사가 펼쳐진다.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그의 그림 속 세계는 하나의 ‘축제’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날들도, 때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평범한 하루들도, 그의 손끝을 지나면 다채로운 색과 의미를 입고 찬란한 순간으로 바뀐다. 흰 여백 위에 선명하게 떠오른 사람들의 색채는 마치 인생의 어느 한 구절을 조용히 낭독하는 듯하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하루, 나의 기억과 감정이 그 안에 스며든다.


나는 그의 그림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무대 위 배우처럼 손을 흔드는 인물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작은 그림자에서, 그리고 도시의 빌딩 사이를 무심히 걷는 누군가에서. 그렇게 김주환 작가의 그림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전시장의 공기는 한없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벽에 걸린 캔버스들이 저마다 속삭이듯 말을 건다. ‘오늘도 잘 살아낸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지금 이 순간도 축제의 일부’라고. 어떤 작품은 밝고 경쾌했고, 어떤 작품은 깊고 고요했으며, 어떤 것은 한참을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이 전시가 주는 힘은 거창한 메시지보다도,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특히 노란빛 배경의 원형 구도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형형색색의 인물들이 원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삶의 순환처럼 느껴졌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웃음과 눈물이 그 원 안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저 안에서 가족을, 누군가는 친구를, 누군가는 지나간 옛날의 자신을 만났을 것이다.

북한강갤러리라는 공간도 이 전시에 참 잘 어울렸다. 북한강의 물결처럼 잔잔하고 깊은 감성이 그림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통유리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그림.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살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다. 이 계절, 바람이 조금은 차갑지만 그만큼 맑고 투명한 이때에 꼭 한 번 다녀오기를 권한다. 김주환 작가의 그림은 특별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눈과 마음으로 마주보면 된다. 삶의 축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바로 그 축제의 중심이다.


오늘도 그 그림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무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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