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말마다 나는, 빛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조나단 베르탱 사진전 ‘빛과 색의 인상주의’ 감상

by 두유진

주말이 되면 나는 꼭 어디론가 걷는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 두세 정거장을 지나 도착한 작은 갤러리,

그곳이 오늘 하루의 여행이 된다.


가끔은 일주일 동안 미뤄둔 감정을

그 조용한 벽면 앞에 놓고 천천히 마주한다.

이번 주말, 내가 찾은 전시는

조나단 베르탱 사진전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였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내 눈은 잠시 현실에서 떨어졌다.

회화 같기도 하고, 기억의 조각 같기도 한 이미지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펼쳐져 있었다.


빛이 흔들리고, 색이 흐르고,

사람은 흐릿하게 잔상을 남긴 채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진이지만 그림 같았고,

현실이지만 꿈처럼 느껴졌다.

풍경을 찍되, 감정을 담다


전시는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자연과 사람, 두 번째는 도시의 풍경,

그리고 마지막은 인상주의에 대한 오마주.


그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푸르른 호수 앞에 나룻배를 저어가는 인물을 담은 사진 앞이었다.

흔들리는 나무와 색채, 흐릿한 윤곽.

그 장면은 어릴 적 시골 외가에서의 기억과 겹쳐졌다.

지금은 없는 할머니의 말없는 웃음과,

물결 위를 조용히 가르던 노의 리듬까지 떠올랐다.


요즘 우리는 너무 선명한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다.

해상도 높은 화면, 날카롭게 포착된 현실.

하지만 그 선명함은 때로 감정을 밀어낸다.

조나단 베르탱의 사진은 그 반대였다.

흐림 속에서 더 선명하게 마음을 느끼게 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


두 번째 공간에선

익숙한 도시의 풍경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노란 우체통, 택시 정류장, 창 너머로 비친 거리의 실루엣.

그 속에 담긴 건 단지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를 지나던 ‘사람의 기척’이었다.


내가 매일 걷는 거리도

이렇게 바라보면 얼마나 다르게 다가올까.

속도를 늦추고, 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고,

그렇게 하루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분명 조금 더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네의 그림에서, 사진의 세계로


마지막 섹션은 인상주의에 대한 오마주였다.

특히 클로드 모네의 루앙 대성당을

600장 가까이 찍어 완성한 사진 앞에서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진인데 붓터치가 느껴졌고,

카메라인데 숨결이 담겨 있었다.

그는 렌즈로 빛을 그리는 사진화가였다.


그 작품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완벽한 구도보다, 진짜 감정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삶으로 돌아오는 길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

나는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말랑해진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도시의 소음은 여전했지만

내 귀엔 마치 잔잔한 파도 소리가 깔려 있었다.

주말의 짧은 산책이

이토록 깊은 여운을 남겨준 것은

‘그림 같은 사진’이 아니라,

‘감정이 스민 빛’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말마다, 나만의 인상주의


가까운 갤러리를 찾는 일은

내게 여행이자 쉼이고,

마음을 덜어내는 의식과도 같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림 앞에 서면,

나는 이미 내 안의 세계를 걷고 있으니까.


당신의 이번 주말은, 어떤 인상으로 남을 예정인가요?

혹시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빛과 색의 인상주의’를 따라

조나단 베르탱의 세계로 걸어가보는 건 어떨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