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한 위로, 자작자작한 삶
살다 보면, 마음에 비가 오는 날이 있다. 예고 없이 내리고, 천천히 젖어드는 그런 날.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거리를 서성이는 기분으로 나는 나의 감정 속을 걷는다. 그런 날이면 괜히 말수가 줄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고요해지고 싶어진다. 소음을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피하고 숨다가 결국 비를 맞고 있는 나를 들키기 된다. 그럼 비에 젖은 나를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마음의 비가 잦아들 수 있도록 우산을 들어주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 안오던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야하는 지하철역이 가까워 올 무렵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오는 한강은 너무 운치있었지만 비를 맞을 생각하니 걱정이 시작됐다. 비를 맞아야 하나 하우산을 또 사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하철 입구까지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비 많이 와요. 내가 갈게요.” 아무렇지 않게 건넨 그 말 한마디와 우산 하나. 몸은 젖지 않았지만, 그 순간 마음이 먼저 따뜻해졌다. 함께 걷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느꼈고,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이 닿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도 불편하지 않고, 걸음은 자연스레 맞춰졌으며, 어깨가 스칠 때조차 조심스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우산을 함께 쓴다는 건, 단지 비를 피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건 마음을 나누겠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공간을 조금 줄여서라도 다른 누군가의 젖은 마음을 품어주는 일. 그 우산 아래에서 나는 보호받는 동시에, 나도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짧은 동행이 끝난 뒤에도, 나는 그 따뜻한 여백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살면서 우리는 때때로 너무 커다란 세상을 마주한다. 비처럼 쏟아지는 일들,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바람 같은 말들, 젖어버린 마음을 다 말리기도 전에 또다시 내리는 그 무수한 감정들 속에서 나를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럴 때, 우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삶의 울타리가 된다. 누군가를 향한 작은 배려, 내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 그리고 우리가 나눈 온기의 증거가 된다. 우산을 함께 쓴다는 건 내가 네 편이라는 조용한 신호다. 내가 네 옆에 있다는 작고 단단한 약속이다.
비가 멈추는 걸 기다리기보다는 함께 그 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더 큰 위로라는 걸. 우산은 비를 막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방식이기도 하다. 삶은 언제나 맑지 않기에, 함께 우산을 쓰는 법을 아는 사람과 걷는다는 건 어쩌면 이 복잡한 세상을 함께 살아내는 가장 따뜻한 방식일지 모른다.
우연히 내린 비에 우리는 파전이 생각났다.
우리 동네에서 파전이 생각나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소담채!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부침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우리는 소담채의 파전을 너무 좋아한다.
그야말로 '파' 전 이 다.
비가 자작자작 내리는 저녁, 창밖에 번지는 빗소리는 마치 ASMR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따뜻하게 노릇노릇 부쳐낸 파전과 시원한 막걸리, 고소한 생두부를 앞에 두고 우리는 하루의 복잡함을 잠시 내려놓은 채 웃고 있었다. 삶의 동반자란, 맑은 날뿐 아니라 이렇게 비 오는 날에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