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의 자화상 앞에서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얼굴을 옮겨 담는 단순한 행위 같지만, 실은 그 이상의 질문을 품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세상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화상은 이런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화가는 그림으로 그 답을 남긴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들은 그 질문과 답변의 기록이었다.
1908년의 자화상을 보면, 그녀는 갈색과 오커톤으로 차분히 자신을 그려냈다. 화면 속 인물은 꾸밈이 없고, 그저 정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표정은 단호하지도, 미소 짓지도 않는다. 대신 고요한 가운데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당시 그녀는 입체파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지만, 곧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 “입체파는 내 삶의 3년을 중독시켰다.” 그녀의 고백은 남성 중심의 강렬한 언어 속에서 자신이 희미해져 가던 시간을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의 자화상은 불안하면서도 나만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결심이 겹쳐 있다.
그녀가 《아폴리네르와 친구들》(1909)에 자신을 다시 그려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카소가 작품 속에서 그녀를 비하적으로 묘사했던 경험은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랑생은 침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붓을 들어 자기 자리를 다시 배치했다. 작품 속 그녀는 주변 남성들 사이에서 중심에 앉아 있다. 시선은 흔들리지 않고, 표정은 차분하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당당히 자리를 지키는 태도는 충분히 강하다. 이것은 요란한 저항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분명한 선언이었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과 망명의 시간을 지나며 그녀의 자화상은 또 한 번 달라진다. 회색과 분홍, 파스텔 톤이 주조를 이루며 한결 부드럽고 은은한 분위기를 띤다. 그러나 화면 속 표정은 결코 단순한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 눈을 살짝 내리깔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불안과 성찰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세계를 지켜내려는 의지 역시 선명하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도 자기만의 색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용기는 이렇게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태도 속에서 자란다.
로랑생은 늘 ‘뮤즈’나 ‘여성 화가’라는 수식어로 불렸다. 그러나 그녀의 자화상은 그 수식어를 조용히 거부한다. 그녀는 모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영감을 주는 그림 속 대상이 아니라, 직접 그림을 창조하는 주체였다. 자화상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통해 스스로를 모델이자 화가로 동시에 세웠다. 여성은 배경이나 장식으로 존재하는 시대에, 로랑생은 자기 존재를 주체로 그려 넣으며 역사의 한가운데 섰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세상의 기준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가. 좋은 성과, 안정된 관계, 사회적 인정이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남의 기대에 맞추다 보면,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어진다. 로랑생의 자화상은 이 순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 존재하고 있나요?”
스스로 존재하는 용기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남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요히, 내 자리를 지키는 태도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나를 억지로 맞추지 않고, 나만의 색으로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 때로는 불안하고, 외롭고, 흔들리더라도 그 과정 전체가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 로랑생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자화상을 떠올리면 한 가지 배움이 남는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바라보며 “나는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그 말이 가능하다면 이미 충분하다.
스스로 존재하는 용기, 그것은 요란한 함성이 아니라 고요한 선언이다.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