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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유진 Dec 27. 2024

낡은 미술관의 발견

잃어버린 색을 찾아서

새로운 색깔을 만나다

작은 캔버스 앞에 앉아 있던 하루는 처음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붓을 쥔 손은 어색하게 떨렸고, 캔버스는 너무나 하얗고 비어 있어 막막하기만 했죠.

미오는 조용히 하루의 옆에 앉아 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괜찮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해봐. 색깔이 꼭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중요한 건 네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거야.”

그 순간 하루의 머릿속에 어제 꾼 꿈의 회색빛이 떠올랐습니다. 하루는 떨리는 손끝으로 물감 하나를 짜서 캔버스에 조심스레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칠해진 색은 탁한 회색. 흐린 하늘과도 같은 그 색은 하루의 가슴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그리는 회색은 점차 다른 색들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흐릿했던 붓질이 점차 부드러워지며 파란색, 초록색이 물감에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몰입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잠들었던 감정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듯했습니다.

미오는 하루의 그림을 지켜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루야, 네 회색빛도 소중한 색이야. 하지만 가끔 다른 색들도 네 안에 숨겨져 있을 거야. 오늘은 그 색을 하나씩 찾아보자.”


 마음을 담은 그림, 화실의 비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는 어느새 캔버스를 가득 채운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림 속 곡선과 색들은 마치 그의 마음이 캔버스 위로 펼쳐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화실 깊숙한 곳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와 미오는 동시에 그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미술관 안쪽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은 살짝 열린 채 하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문은 뭐지?”
 하루가 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습니다. 그곳은 마치 다른 세계와 같았어요. 벽에는 끝이 없는 듯한 그림들이 가득했고, 빛을 머금은 색채들이 공기 속을 떠다니는 듯했습니다.

미오는 이곳을 “감정의 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방은 우리가 그린 그림과 마음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너의 회색빛도 여기에 있고, 내가 그린 노란색과 푸른색도 있어. 모두 다른 감정이지만 서로 만나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거든.”

하루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그림은 따뜻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어떤 그림은 깊은 푸른색이었어요. 그리고 그 그림들 사이에는 흐릿한 회색빛 그림도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미오는 하루에게 말했습니다.
 “감정은 절대 나쁘거나 틀린 게 아니야. 회색도, 검은색도, 노란색도 모두 네 마음의 색이니까. 그리고 그 색을 알게 될수록 너는 네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거야.”


새로운 여정의 시작

그날 이후, 하루는 매일 방과 후 ‘마음의 화실’을 찾았습니다. 미오와 함께 캔버스를 펼쳐 놓고 하루의 감정을 색으로 풀어내기 시작했어요. 어떤 날은 강한 붉은색을 칠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밝은 초록빛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점차 하루의 그림은 다양해졌고, 그 안에는 웃음, 눈물, 그리고 설렘 같은 감정들이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미오 또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며, 두 사람은 각자의 색을 발견하고 공유했습니다.

하루의 회색빛 꿈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꿈속에서 회색을 만나면, 하루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이 회색도 나의 일부야. 하지만 나는 다른 색도 그릴 수 있어.”


낡은 미술관의 비밀

어느 날, 미오는 하루에게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주었습니다. 책에는 ‘마음의 화실’이 탄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마음의 화실은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단다. 그들이 잊고 있던 감정을 그림으로 되찾도록 도와주는 신비한 공간이지.”

그 이야기를 읽은 하루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화실’은 그동안 자신이 필요로 했던 쉼터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오는 그곳의 비밀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친구였던 거죠.


모두의 색을 찾는 날

몇 주 후, 하루는 학교 친구들에게도 ‘마음의 화실’을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너희도 너희만의 색깔을 찾아보지 않을래?”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으로 향했어요.

처음에는 모두가 멀뚱멀뚱 캔버스를 바라보며 어색해했지만, 이내 하나둘씩 자신의 색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주황색, 어떤 친구는 보라색을 그렸어요. 하루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모두의 색이 이렇게 다르지만 함께 있으면 정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구나.’

그날 미술관은 아이들의 그림과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하루는 이제 더 이상 회색빛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색깔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것은 하루의 새로운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음의 화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오래되고 빛바랜 간판이지만, 그곳은 잃어버린 마음의 색을 찾아주는 신비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루와 미오의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문이 열리다

하루와 미오는 ‘마음의 화실’ 한쪽 구석에서 이상한 문을 발견했습니다. 그 문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어요. 오래된 나무 문에 빛나는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은 마치 그림 속 물감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문은 뭐지?” 하루가 궁금한 듯 문을 만지자, 문양이 반짝이며 희미한 빛을 뿜어냈습니다. 동시에 문 너머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리—마치 “어서 와요, 그림의 세계로” 라고 속삭이는 듯한 신비로운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닿았습니다.

미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하루야, 이 문은 아마 마법의 미술관으로 가는 문일지도 몰라!”

“마법의 미술관…?” 하루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들은 호기심과 설렘에 차 문을 조심스럽게 밀어보았습니다.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 너머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물감의 강, 스스로 움직이는 그림 속 캐릭터들, 그리고 말하는 붓과 신비한 물감들이 가득한 마법의 공간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미오는 손을 내밀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하루야, 새로운 색깔을 찾으러 가보자!”

하루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미오의 손을 잡았습니다. 두 사람은 문을 넘어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향해 한걸음 내딛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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