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갓생
일요일 오후 2시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참 좋습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햇살을 만끽하는 대신 황급히 스마트폰을 찾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타인의 전시된 삶을 훔쳐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운완을 인증한 누군가.
주말에도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나간 누군가.
그들의 치열함과 나의 나태함을 비교하는 순간
휴식은 평온이 아니라 죄책감으로 돌변합니다.
'나 지금 이렇게 누워있어도 되나?'
'남들은 저만치 뛰어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쉴 때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내야만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강박.
우리는 그것을 갓생(God生)이라 포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나를 갈아 넣어 불안을 메우려는 처절한 허기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세대 같지만
실은 가장 악랄한 독재자 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독재자의 이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과거에는 상사가 퇴근을 시켜주면 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감시자가 된 나는 퇴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뉴스레터를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기 착취라고 부릅니다.
남이 시키면 반항이라도 할 텐데,
내가 나를 시키니 반항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기이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
영혼이 하얗게 타버릴 때까지 채찍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은 묻습니다.
"너 오늘 뭐 했어(Doing)?"
"그래서 어떤 성과를 냈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면
하루를 망쳤다고,
너는 쓸모가 없다고 다그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능하는 기계가 아니라
존재하는 사람(Being)입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기에 꽂아두듯 사람에게도 전원을 끄고 멍하니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인생의 낭비가 아닙니다.
과열된 뇌를 식히고
고갈된 마음의 우물에
다시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가장 거룩한 재생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계획대로 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알람을 끄고 정오까지 잤다면
당신의 몸이 그만큼 피곤했다는 뜻입니다.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떡볶이를 먹었다면
당신의 마음이 그만큼 허기졌다는 뜻입니다.
내면의 감독관에게
구구절절 변명하지 마십시오.
성과 없는 하루를
용서하려 애쓰지도 마십시오.
그저 고단한 몸을 이불 속에 파묻고
가만히 당신의 숨소리를 들어주세요.
"애썼다."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그 투박한 독백 하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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