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1)
7월 중순
한여름의 정점에서 정기 인사가 났다. 사무실이 짐 정리로 어수선한 가운데, 내 전산망에는 달갑지 않은 이름 하나가 새겨졌다.
50세, 나예희
그녀의 이름 옆에는 상세불명의 정신병으로 의심됨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소위 ‘갑질 민원’으로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뉴스에서나 보던 ‘상습 민원인’의 전형이 내 담당으로 배정된 것이다.
기록을 훑어보니 그녀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백화점, 카페, 옷가게, 행정복지센터, 구청까지. 그녀는 '소비자의 권리'나 '시민의 의무'라는 명분을 앞세워 타인의 사소한 실수를 집요하게 수집했다. 그녀에게 민원은 정당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키고 기를 죽여 자신이 원하는 대접을 받아내기 위한 무기였다.
그녀는 현장에서 실무자와 입씨름하며 감정을 낭비하지 않았다. 곧바로 기관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상급 부처에 글을 올려 담당자의 목줄을 죄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상대하는 노련하고도 영악한 방식이었다.
첫 면담 날
나예희는 예약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앞선 면담 대상자와의 대화가 조금 길어지는 바람에 그녀는 대기실에서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면담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뼈가 도드라질 만큼 앙상한 체구였지만, 뿜어내는 기운은 면담실 안의 산소를 전부 빨아들일 듯 위협적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를 빤히 쳐다보며 가방끈을 매만졌다. 목소리가 차갑고 날카롭다.
“주무관님, 1층 안내대에 앉아 있는 직원 말이에요. 원래 그렇게 교육합니까?”
예상치 못한 첫마디에 나는 당황을 누르고 차분히 입을 뗐다.
“나예희 씨, 반갑습니다.
안내대 직원분께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셨나요?”
“아니, 그분 말이에요. 사람이 들어오는데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빤히 쳐다보는 거죠? 인사를 하면 뭐 해요, 표정은 굳어서 전혀 친절하지가 않은데. 안내실에 있는 분이 그렇게 기본 소양이 부족해서야 되겠어요?”
“보안 업무상 출입자 확인을 위해 응시하신 것 같은데, 기분이 상하셨나 보네요. 그 부분은 제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넘기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담당자가 이렇게 자주 바뀌나요?
바뀔 때마다 이렇게 새로 확인하시는 거예요?
전임자분은 어디로 가신 거죠?
그분은 제 사정을 참 잘 아셨는데.”
“인사이동은 정기적인 절차입니다. 제가 나예희 씨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주소지 변동 사항은 없으신가요?”
“주소요? 전에 다 말했는데요. 그대로예요.”
그녀의 말투는 송곳처럼 예리했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현재 무직으로 되어 있으신데, 준비하시는 게 있나요?”
“전산에 없어요?
사회복지사 시험 친다고. 제가 말한 거 기록에 없어요?
시험 일정도 다 말했는데 왜 자꾸 물어보세요.”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진행 상황을 여쭤본 거예요.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똑같아요.”
“똑같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니, 거기 안 적혀 있어요?
지난번 담당자한테 다 말했는데...
주무관님, 저한테 질문하기 전에 기록부터 좀 확인하시면 안 돼요?
공무원이신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확인 안 하고 사람을 불러 놓은 거예요?
제 아까운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시고요.”
그녀는 내 전문성을 집요하게 깎아내렸다. 질문 하나마다 비웃음을 섞어 나를 훈계하듯 몰아세웠다. 평소 나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마음을 열어왔지만, 나예희에게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공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 일방적인 기세에 눌려 나는 자꾸만 숨이 막혔다.
그녀가 나간 뒤, 썰물처럼 기운이 빠져나갔다.
내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생각해 보니
이 여자는 지금 나를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자신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서비스직 직원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보호관찰소에서조차 VIP 대접을 요구하는 그 오만함에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나간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행정지원과에서 전화가 왔다.
“한 주무관, 나예희 씨 민원 들어왔네요.
1층 직원이 불친절하고, 예약 시간에 맞춰 왔는데 담당자가 10분 기다리게 해서 기분이 나빴대요. 그리고 너무 꼬치꼬치 물어본다고 하네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멍했다.
황당했다.
보호관찰소에서 10분 대기는 흔한 일이지만, 나예희에게 그 시간은 곧바로 민원의 소재가 됐다. 그녀는 앞에서는 차갑게 기싸움을 하고, 뒤에서는 사소한 틈을 노려 칼을 꽂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한 달에 두 번, 면담 날이면 어김없이 민원이 들어왔다. 사유는 매번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닫기로 했다.
어떤 사담도, 배려도 섞지 않고 오로지 기계적인 원칙으로만 대하기로 했다. 그렇게 적정선만 지킨다면, 이 날 선 여자 앞에서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Ps.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작합니다.
자영업자, 공무원들이 만나는 프로 민원러...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민원 공식 = 화내면 지는 것이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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