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맛있는 음식을 보면, 왜 문득 그 사람이 떠오를까:사랑이 남긴 잔상
‘문득’ 이 단어에는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무언가 가슴이 뭉클해지고
머릿속엔 옛 기억이 뭉게뭉게 떠오르거든요.
혹시 예쁜 것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를 떠올리신 적이 있나요?
-전승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책 속 이 문장을 읽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즉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었고,
결혼 후엔 서서히 남편이 스며들었다.
사랑이란, 이렇게 마음 한 귀퉁이를
점령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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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주말 오전,
나는 강남 역삼동의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이
그릇에 담긴 듯 공간을 감쌌다.
샹들리에는 금빛 물결처럼 빛을 흘렸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이 공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잠시 나는, 손님이 아니라
초대받은 주인공이 된 듯했다.
눈길이 천천히 공간을 스캔하는 동안,
내 안에 숨은 설렘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음식이 차례로 테이블에 올려졌다.
고운 채소들이 원을 그리며 춤추고,
소스는 붓 끝의 물감처럼 접시 위에 번졌다.
그 색과 향이,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남편이 떠올랐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생각은 바람결처럼 가볍게 스쳤지만,
곧 마음 깊은 곳을 파문처럼 넓혀 갔다.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것이 바로 사랑의 다른 정의가 아닐까.
나는 지인을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
“언니,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야?”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지.”
그 짧은 대답에, 묘한 울림이 번졌다.
누군가를 ‘문득’ 떠올릴 수 있다는 건,
그 존재가 우리의 삶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라는 뜻이니까.
사랑은 대단한 말로 포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를 멈추게 하는 순간,
불시에 찾아오는 그 얼굴 속에 숨어 있다.
당신은 아름다운 순간 앞에서
가장 먼저 누구를 떠올리는가.
그 얼굴이야말로, 사랑이 남긴 잔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잔상은,
메마른 하루의 표면에 고요한 결을 새기고,
안갯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만든다.
“사랑이란 결국, 그 누군가를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는 일이다.”
- 알랭 드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