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주부의 편지

#17 엄마의 결혼에 관하여 : 헌신

by 마인드 오아시스

"oo엄마! 배고프니까 된장찌개라도 끓여봐"

퇴근 후 저녁,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허기가 폭발 직전인 듯, 배꼽시계가 아우성을 친 것이다.


"네, 기다려요. 금방 내올게요"


엄마는 대답과 동시에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묘하게 무거웠다.

양성평등이 당연시되는 오늘에도, 왜 늘 엄마가 먼저 주방으로

달려가야 하는 걸까.

배고픈 사람이 먼저 밥을 차리면 안 되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아빠와 결혼을 했을까.

그 출발이 지금의 이 모습과 어떻게 이어져 온 걸까.


나는 조심스레 주방에 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랑 어떻게 만났고, 왜 결혼하게 된 거야?"

왜 결혼했냐니.. 질문을 건네고도 어이없는 질문이었지만, 마치 취조를 하듯이

답을 재촉했다.


엄마는 꽃다운 나이. 20대를 떠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를 섞어가며, 엄마는 질문에 답을 했다.


"그때 취업을 용인으로 했었거든. 그래서 너희 외할머니가 중매 서셔서 '용인 남자'

네 아빠를 만나게 됐지. 그 시절에는 키가 크니, 잘생겼니, 차는 있니 이런

조건을 따질 겨를도 없었단다. 외할머니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하셨고,

그 말만 믿고 결혼을 결심했단다."


외할머니의 말 한마디로, 순진하게 결혼을 감행하다니..!

그것이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꽃다운 나이 20대에 시집와 두 자녀를 낳았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온 그녀는, 악착같이 누구보다 열심히

가정을 지키는데 힘을 쏟았다.


겨울이면 살을 에는 바람을 뚫고 5일장에 나가 배추를 팔았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을 때마다 엄마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내 딸들은 훗날 따듯한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자.

그러니까 오늘도 부지런히, 장사하자!"


"배추 사세요~~!!"


그렇게 외치며 배추를 팔고, 문구점을 운영하고, 족발집과

해장국집까지 이어갔다. 주말도, 휴일도 없는 세월이었다.


무뚝뚝하고 무드 없는 아빠에게 꽃 한 송이 받아본 적 없었지만,

엄마는 불평 대신 늘 긍정을 선택했다.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한 가정을 단단히 지켜왔다.


시간은 흘러, 엄마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우리 자매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직업을 가졌고, 더 이상 겨울 장터의 찬바람은

엄마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헌신.

그러나 나는 이제야 안다. 그 헌신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어진 인내였음을.


결혼 3년 차가 된 지금, 나 또한 엄마의 삶을 곱씹게 된다.

두 자녀를 낳고도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시댁의 구박을 견뎌낸 엄마.

20대 청춘을 가족에게 바치고 어느덧 60대에 이른 그녀.

그 세월의 무게를 나는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 당신의 결혼은 '헌신'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함께 안아드리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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