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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Feb 28. 2024

생의 모순을 견디기 위하여




이 책을 천천히 읽었다. 쉽게 읽히지만, 절대 쉽지 않은 깊이감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아무리 무음으로 해놓고 틈틈이 집중을 해보려 해도 이놈의 세상은 무척 소란스럽다. 책을 들었다 놨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다 말기를 반복했다. 나의 이런 ADHD 적인 부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 어느 순간에서 부딪히든지 나와 만나는 문장들은 그마다 밀도가 높았다. 쉽게 이탈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생의 『모순』을 이야기하기 위해 책 속의 시간인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계절별로 등장한 독자적 플롯은 참으로 지독하게 느껴졌다. 쌍둥이 자매의 극과 극의 현실, 주인공 진진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마지막 결말 등은 독자로 하여금 너무 '감정 과잉'을 일으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통속적인 내용과 극적인 전개로 정서를 마구 자극하는, 그래서 낯짝이 아주 간지러운 것 같은.

허나 이 작품은 1998년에 처음 세상을 본, 약 26년 전 시대적 감성으로 쓰인 이야기이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지금의 눈으로 당시의 작품을 짚고 있는 내가 한심하였다. 게다가 나는 뭣도 모르는 까막눈이면서 말이다. 이런 까막눈에게도 매번 눈길을 붙들었던 문장들은 하나같이 인생이라는 것을 푹푹 고아 낸 깊은맛이 났다. 주인공 '안진진'은 겨우 25살의 대학생이지만, 그의 눈으로 서술된 그림들은 인생 중반의 어디 쯤을 지나는 누군가의 것이었므로.

작가 스스로도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작품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장편이지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는 것. 독자인 나는 작가의 말을 읽기 전 알아차렸던 것에 흐뭇해진다. 글을 보면 느껴진다, 어느 정도의 정성인지. 물론 창작자의 마음이 제일 양심적이고 정확할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쓴다. 쉽게 쓰지만, 깊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작품의 주요 테마인 이 단순한 명제를 작가는 처절한 농밀함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더 깊이, 오랫동안 가슴을 울린다.

(...)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

- 작가 노트 중에서

나는 오랫동안 안진진으로 살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쌍둥이 이모처럼 살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내므로, 이제는 진진의 어머니처럼 세상에 정면돌파할 억척스런 경쾌함을 짊어지고, 생의 다양한 모순을 기꺼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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