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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단편소설집

by 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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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단편이 묶여 있다. 단편이라 부르지만, 결코 짧지 않다. 한 편을 읽고 나면 가슴 속 깊은 데서 오래 묵은 바람 같은 게 빠져나갔고, 또 다른 한 편을 읽으려면 새로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읽는 내내 호흡은 더 느려졌고, 멈추고 싶은 순간마다 오히려 더 바짝 붙잡혔다.

이 일곱 편을 꿰뚫는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인권 감수성’을 떠올린다. 가진 자리에 서 있는 우리는 너무 쉽게 눈이 멀고, 갖추지 못한 것들에겐 너무 쉽게 등을 돌린다. 무심함은 곧 무례가 되고, 그 무례는 너무 흔해져서 이제는 무례라 불리지도 못한다. 낮은 감수성은 마치 바닥없는 웅덩이처럼 우리 발밑을 늘 젖게 만든다.

폭력은 소리 지르는 말이나 드러난 몸짓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눈길 하나, 억양 하나, 무심히 튀어나온 태도의 단면이 더 깊숙이, 더 오래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낸다. 보이지 않기에 더 잔인한, 침묵의 폭력들이.

김애란의 문장은 그런 보이지 않는 결을 포착한다. 일상적인 감각과 낯설게 다가오는 비유, 호흡에 섞인 숨결 같은 문장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녀의 글을 찾는다.

구름이 낮게 깔릴 때, 유독 외로움이 몰려올 때, 몽롱한 새벽 차가운 공기를 맨 얼굴로 맞으며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처럼. 김이 서리듯 스산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나는 그녀의 문장들로 일상 속 차가운 투명함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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