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은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러나 문제는 늘 과음이다. 당신은 어느 정도 마시는가? 과음주자라 생각하지 않는가?
필자의 주량을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대학원 생활 중 술을 '잘' 마시면 맨 정신에는 안 써지던 영어 논문이 잘 써지던 것을 굳이 자랑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물론, 전날 그렇게 논리적이던 논문의 흐름이 다음날은 굳이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들 짐작하리라 믿는다). 다만, 알코올 중독 연구, 치료를 했던 것을 뒤돌아보며 잠깐 잡담을 하고 싶어 졌을 뿐이다.
중독에 대해, 특별히 알코올 중독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니 하나 좋은 점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술을 가까이하게 된다. 한창 대학생 과음주자를 대상으로 실험 연구를 할 때는 우리 연구실에도, 옆 연구실에도 항상 술이 구비되어 있었다. 맥주, 보드카, 와인 종류별로 구비를 해 놓고 연구 참여자에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고르게 하고는 술을 따라서 술잔을 잡고 냄새를 맡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고 싶어 할까?
'음주 동기'라는 개념으로 연구된 논문들은 아주 많다(Kuntsche et al., 2005). 일반적으로 4가지 종류로 음주 동기를 나누는데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환경 자체를 좋아하는 사회적 동기(social motives), 기분이 좋은 순간을 극대화시키고 싶어 하는 고양 동기(enhancement motives), 술로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떨쳐버리고 싶어 하는 대처 동기(coping motives), 술을 마시는 문화적, 사회적 규범에 맞춰 가려는 순응 동기(conformity motives)가 있다.
자, 본인의 동기를 한번 찾아보자. 모두 다 해당된다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그러니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최근에 술을 아주 많이 마셨을 때 어떤 이유로 마셨는지 떠올려 보라. 요즘 방학이라 술을 마실 기회가 많이 없을 수 있으니, 한창 마실 때를 생각해 보자. 이 4가지 동기 중, 가장 강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보통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은 사회적 동기나 고양 동기가 높을수록 과음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중장년층에서는 대처 동기가 높을수록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젊은 층은 술을 마시는 환경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일수록 술자리가 많아지고 술자리로 초청'당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취하게 될 기회가 증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코올 중독이라고 떠올리는 장년층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골방에서 소주를 쌓아 놓고 일어나자마자 술을 마시고 술로 잠을 청하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동기는 대학생에게 가장 흔하다. 그러나 '인생은 같이 살아가지만 또 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가는 과정인 걸까. 단순히 술자리 자체가 좋아서 술을 마셨던 사람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술자리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으면 술이 아니면 해결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술을 점점 줄여 갈 때 술을 계속해서 마시게 되고 그로 인해 문제는 오히려 더 많아진다.
나는 술 문제없는데...
알코올 중독 병동에서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내담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나는 문제가 없는데, 부인이/남편이/친구가 하도 뭐라 해서..."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다. 그냥 알코올 중독 병동에 있다는 자체가 머쓱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술로 인해 직업적, 사회적, 관계적, 금전적 문제를 너무 많이 겪고 있는데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처음에는 내가 만만하게 보여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만약 본인이 보통 한 자리에서 와인을 10잔 이상을 마시면, 자기 또래의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정도는 마신다고 믿는다. 또 자신은 단지 남들만큼 마시는데 운이 안 좋아서 술을 마시고 나쁜 일들이 자신에게 특별히 많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인지된 음주 규범(Perceived drinking norm)'이라고 한다(Carey et al., 2007). 보통의 과음주자는 인지된 음주 규범 자체가 굉장히 높다. 즉, 다른 사람들도 본인처럼 다들 이 정도는 마신다고 진실로 믿고 자신이 남들에 비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정말로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환자들에게 치료과정에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그 환자의 동년배의, 같은 성별의,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음주량과 빈도의 통계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필자가 고안한 '충격요법'이 아니라 이미 이전 연구에서 인지된 음주 규범을 현실적 수준으로 낮추는 알코올 중독 치료에 쓰이는 방법이다.
한 자리에서 5잔 이상 마시나요?
그렇다면, 과연 얼마큼 마시면 술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의심을 해 보아야 할까? 사실, 이는 생각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는 술의 양과 빈도에 대한 질문만으로 알코올 중독을 진단하지 않는다. 많은 항목들이 음주로 인해 겪는 사회적인, 학업적인, 신체적인, 정서적인, 금전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단답형 질문이 아니라 서술형 질문이다. 그러나 실제 치료 현장에서는, 특별히 술 문제 때문에 찾아오는 곳이 아닌 환경(내과병원, 보건소 등)에서는 음주 문제가 있는 것 같을지라도 술로 인한 문제들을 일일이 묻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질문에 대한 최대한 가까운 단답을 찾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 연구들이 단일문항 알코올 선별 질문(Single alcohol screening questionnaire)을 찾는 것인데, 최근에 필자가 그러한 논문들을 리뷰한 결과 남자는 한 자리에서 5잔, 여자는 한 자리에서 4잔 이상을 마시는지에 대한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경우에는 알코올 중독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Kim & Hendershot, 2020). 즉, 본인이 한 자리에서 4잔 또는 5잔 이상을 연속해서 마신다면 과음주자로 분류될 수 있으니, 이들은 자신의 음주 행동을 모니터링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알코올 중독자인데....
이것만큼 가슴 아픈 질문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알코올 중독의 유전적 원인이 50% 정도가 되니(Dick & Foround, 2003), 유전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을 마음속으로 따라 하는 사람들은 아직 슬퍼하기는 이르다. 이 사실을 또 다르게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유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10~20년 동안 활발히 연구되어 오고 있는 주제가 바로, 알코올 중독과 관계있는 유전자 형태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발현되지만 어떤 환경에서는 전혀 발현되지 않은 채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영향이 강하다 해도 유전자가 마치 보균자처럼 단순히 유전자의 요인의 형태로(genotype) 있을지, 아니면 발현되어 중독행동으로 나타나게 될지는(phenotype) 다른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
예를 들어, 세로토닌 특정 유전자의 형태를(5-httlpr short allele or low activity allele) 가진 사람들이 가족 불화에 계속 노출되면 알코올 남용이 높아지지만, 같은 유전자 형태라도 그러한 환경에 대한 노출이 적으면 알코올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는다(Kim et al., 2015). 즉, 유전자는 교정이 불가능하지만 유전자의 표현력을 좌지우지하는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면 취약 유전자 대상 선별 및 그 대상의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효율적으로 중독행동을 감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결국, 유전력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한 유전요인을 폭발시킬 것 같은 대상, 환경들을 피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어쩔 수 없이 노출된 환경에 대한 적극적으로 개입해 줄 수 있는 전문가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알코올과 알코올 중독 사이에서, 밸런스
가볍게 이야기를 풀려고 시작한 글이 너무 무겁게 끝난 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술은 참 친숙하고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무거운 대상 이리라...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인 동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 많은 아픔을 준다. 그래서 나에게도 술은 항상 찾으면서도 거리를 두게 되는 존재이다. 오늘도 와인이 떨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동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본다. mind
<참고문헌>
Carey, K.B., Borsari, B., Carey, M.P., & Maisto, S.A. (2006) Patterns and importance of self‐other differences in college drinking norms. Psychology of Addictive Behaviors, 20, 385–393.
Dick, D.M. & Foroud, T. (2003) Candidate genes for alcohol dependence: a review of genetic evidence from human studies. Alcoholism: Clinical and Experimental Research, 27(5), 868-879.
Kim, J. & Hendershot, C. S. (2020). A review of performance indicators of single-item alcohol screening questions in clinical and population settings. Journal of Substance Abuse Treatment, 111, 73-85 [Advance online publication]
Kim, J., Park, A., Glatt, S.J., Eckert, T. L., Vanable, P.A., Scott-Sheldon, L.A.J., . . . Carey, M.P. (2015). Interaction effects between the 5-hydroxy tryptamine transporter-linked polymorphic region (5-HTTLPR) genotype and family conflict on adolescent alcohol use and misuse. Addiction. 110, 289–299
Kuntsche, E. N., Knibbe, R., Gmel, G., & Engels, R. (2005). Why do young people drink? A review of drinking motives. Clinical Psychology Review, 25(7), 841 – 861.
김주은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미국 뉴욕주 Columbia University에서 임상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Syracuse University에서 임상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충남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물질중독에 대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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