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우리 마음은 결코 자립적 존재가 아닙니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할 수밖에 없죠. 오랫동안 기술과 심리학의 만남을 연구해온 이장주 박사가 기술이 심리학과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줄 계획입니다.
기술이 마음에 미친 영향
인공지능(AI) 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나오던 것이 얼마 전 일인데, 이제 그것을 실용화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TV, 청소기, 에어컨같이 요즘 나오는 가전제품은 인공지능을 달고 나오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얼마지 않아서 인공지능이 자동차와 결합되어 자율주행차도 일상 속으로 들어올 기세로 기술발전 속도가 엄청난 듯합니다. 4차산업 혁명이란 말로 요약되는 기술 혁신은 세상만 바꾸어 놓았을 리 없습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기술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AI나 자율주행차 같은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전의 수많은 기술이 축적되어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렇기에 최근의 혁신적 기술이 미친 심리적 영향을 살펴보려면 이전 기술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은 현생인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농업혁명을 첫손가락에 꼽습니다. 대략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던 조상들의 일부가 강가에 먹을 것이 풍족한 지역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게 한 곳에서 머물러 살다가 우연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작년에 씨가 떨어졌던 자리에 곡식이 자라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원하는 곡식을 재배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어낼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과거 조상들이 터득한 불을 사용하는 기술이 사람의 뇌와 마음의 크기를 키웠다면, 농업혁명으로 풍족해진 식량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도시가 생겨났지요.
농업혁명이 만든 세상
농업기술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기술과 마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선 관료제라는 것이 생겨나게 됩니다. 많은 생산물과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따로 전문적인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공무원의 탄생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서 권력을 누리게 되는데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놀라운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글자와 숫자를 다룰 줄 아는 능력입니다.
과거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은 글자나 숫자로 무언가를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이야기나 노래로 정보를 전달해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업혁명은 노래나 이야기 정도로 처리가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정보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연히 사람의 메모리가 부족해지니 보조메모리가 필요했겠지요. 그때 필요한 기술이 글자와 숫자입니다.
글자와 숫자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필수적인 법과 세금으로 대표됩니다. 사용하게 된 사회의 엘리트 계층들은 이전의 인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바로 추상화(abstraction)란 방식입니다. 추상화는 어떤 현상의 이면에 있는 법칙이나 규칙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숫자는 추상화를 위한 도구입니다. 짐승이 10마리이든, 사람이 10명이든, 혹은 곡식이 10자루가 되었든 ‘10’이라는 동일한 숫자(다른 말로 추상적 상징)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추상화의 원리
추상화는 구체적인 많은 대상들을 종합시키는 사고의 기술입니다. 추상화를 사용한다는 의미는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한 세기전 러시아 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Alexander Luria, 1902~1977)는 우즈베크 농부들을 대상으로 심리실험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무, 도끼, 톱, 망치’를 제시하고 이것들 중 하나를 나머지 셋과 구분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한 그룹은 ‘나무’를 다른 것들과 구분하는 집단이었습니다. 다른 한 그룹은 ‘망치’를 다른 셋과 구분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해보니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글을 아는 사람이냐 모르는 사람이냐의 차이였습니다. 나무를 구분한 사람은 글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나무는 ‘재료’이고, 나머지 도끼, 톱, 망치는 ‘도구’라는 추상적 기준을 구분의 잣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반면 망치를 구분한 집단은 글을 모르는 문맹농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맥락적 구분을 했습니다. 나무, 도끼, 톱은 사용하는데 서로 연관이 있는 반면 망치는 이들과 사용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에서의 실험
루리아 실험을 우리나라의 버전으로 바꾼 실험이 있습니다. ‘무, 배추, 참나무, 칼’ 중 하나를 다른 세 개의 것들과 구분을 하라면 ‘참나무’를 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기보다는 ‘김치’라는 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맥락에서 배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와 식생활이 다른 문화에서는 전혀 이해하기 어렵고 필요도 없는 지식일 수 있습니다만, 김치를 일상적으로 먹는 우리문화에서는 상식수준의 지식인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추상적 지식이 맥락적 지식보다 우월하다거나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면 지식과 상식이 바뀝니다. 농업사회는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화 사회를 거쳐 4차산업혁명 사회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사이 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요? 다음 편에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mind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 사회및문화심리 Ph.D.
사회문화심리학전공으로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하면서 게임과 IT문화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쓰기와 강연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또한 게임문화재단 이사,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 이사, 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등을 맡고 있기도 하다. 최근 저서로는 <청소년에게 게임을 허하라>, <십대를 위한 미래과학 콘서트>, <퇴근길인문학수업: 관계> 등이 있다.
>> 한국인을 위한 심리학 잡지, <내 삶의 심리학 mind> 온라인 사이트가 2019년 7월 8일 오픈하였습니다. 내 삶의 비밀을 밝혀줄 '심리학의 세계'가 열립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50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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