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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Oct 12. 2023

치매어머니와 동행 14

추억(1)

어머니는 어린 시절을 평안도 묘향산 자락에서 보내셨습니다.

5남매 중 셋째 딸이셨는데 아마 어렸을 때 꽤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나 불행히도 학교는 제대로 못 다니셨습니다.

여쭤 본 적은 없는데 아마 국민학교도 못 다니신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나이에 일제 시대 태평양 전쟁 말기, 그리고 6.25를 겪으셨거든요.

게다가 그때만 해도 딸은 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으니까요.


그러다가 6.25때 남한으로 피난을 오셨고, 스무살도 되기 전에 살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하셨으니 공부를 제대로 하시지 못한 것이 당연합니다.

사실 어머니만 그런 일을 겪으신 것도 아니기는 하죠. 적어도 그 때 성장하신 어르신들은요.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가는데 예전 이야기를 하나 씩 풀어놓으십니다.

대부분 한번 정도는 들은 이야기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그 날은 피난 와서 식모 살이하며 고생하신 이야기를 하시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서울에 있는 친척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며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3년 동안 이나요.

그 친척 분은 조금만 고생하면 학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어머니는 오로지 그 말만 믿고 빨래, 요리, 청소 등의 험한 일을 열심히 해 주셨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결국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 하신 채 90세가 되신 겁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제가 자랄 때, 우리 집은 꽤나 어려웠는데  중학교 다닐 무렵 아주 잠시 여유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어머니는 바쁘고 어려운 와중에도 영어학원을 다니셨죠.

저녁에 집에 돌아오시면 알파벳을 외우느라 책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길을 가다가 영어로 쓴 간판을 발견하시면 곧잘 읽으셨습니다.

물론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어머니의 그런 실력이 얼마나 대단힌 것인지, 또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죠.


70이 넘어서 노인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신 후에도 한번도 안 빠지고 개근을 하셨고 무사히 졸업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심심하실텐데 노인학교라도 다니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셨나 봅니다.


어머니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제는 어머니 소원을 들어드릴 수 없으니까요.


어머니가 아주 오래 된 추억을, 그것도 가슴 아픈 것들만 골라 풀어놓으시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은 하나도 없고요.


저도 늙고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면 끝에 남는 것은 아쉬움, 서운함, 괴로움 뿐 일까요.

왜 사람의 기억은 이렇게 생겨 먹은 걸까요.


미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가슴이 아프고 또 죄스런 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한이 다 제 탓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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