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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Dec 05. 2019

젊은 날의 우상

첫 직장 생활은 막 설립된 정보통신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군대를 제대한 직후에 구인광고가 신문에 떴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입사지원을 하였으며 다행히도 곧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머리가 미처 자라기도 전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설립한 지 얼만 안 된 회사라서 경력사원들은 서로 다른 여러 회사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열정이 넘쳐났지만 무언가 어수선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개발팀으로 배치를 받았고, 나를 포함하여 신입사원 네 명과 경력으로 입사한 선배 다섯 분으로 부서가 꾸려지게 되었다. 다행히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도 모두 좋은 분들 이어서 집에서 회사까지 좀 멀다는 것만 빼면 직장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우리 부서에서 가장 높은 분은 천 부장님이셨다. 오십 세 정도 되신, 경륜과 리더십을 갖추신 분이셨는데 내가 평생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을 첫 근무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에는 회식을 자주 하였는데, 부장님의 철칙은 술 마실 때 권하지도, 말리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음료수만 마셔도 좋고, 그 날따라 술이 잘 받으면 마음껏 마시되 사고만 치지 말라는 주의셨는데, 군대에서 험악한 술자리를 자주 경험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맘에 드는 방식이었다.


입사동기 중에 나보다 2살 정도 나이가 많은 김 모 선배가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고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김선배가 갑자기 직원들의 별명을 지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며칠 고민 끝에 개인별로 별명을 완성하여 회식 날 발표하게 되었다.


성이 손 씨인데 누가 봐도 반할만한 미남이어서 여직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동기는 수제비, 엉덩이가 크다고 놀림을 받던 또 다른 동기는 엉뚱이, 탈모가 시작된 선배는 대마이카, 그리고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개발팀의 마스코트(?)인 나는 하드최로 별명이 지어졌고 모두 박장대소하며 기발한 별명에 감탄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장님의 별명을 ‘대빵’이라고 발표하자 부장님의 안색이 변하면서 갑자기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대빵은 그저 부서에서 가장 높은 직위라는 의미밖에 없는 것이고, 전혀 성의도 고민도 없이 만든 별명이기에 인정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회식을 할 테니 그때 자신의 별명을 다시 만들어 발표하라고 하셨다. 당시 분위기는 정말 살벌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주일간 신입사원 넷이서 머리를 쥐어짜서 간신히 부장님의 별명을 만들 수 있었고 회식자리에서 발표하자 부장님은 만족하며 굳었던 얼굴에 웃음을 보이셨다.


그 날 발표한 부장님의 별명은 개구리였다. 부장님은 개구리처럼 눈이 약간 돌출된 편이셨고, 개구리가 움츠려 뛰는 것처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자주 강조하는 말버릇이 있었기에 별명으로 제격이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당시 부장님의 리더십은 지금 잘 나가는 신생회사에 적용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을 항상 부하직원들과 같이 하셨고,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갈 수 있다면 때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즐거워하셨던 분이었다.


개구리 부장님은 내가 이직하고 나서 한참 후에 캐나다 이민을 가셨다고 들었는데, 내게는 여전히 가족 다음으로 가장 보고 싶은 사람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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