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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Dec 12. 2019

자식 중독증

어느 날부터 아내와 대화를 하는 것이 몹시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에게 말을 건네려면 이상하게 어색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을 열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이 나이에 권태기가 다시 올리는 없고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일시적인 감정이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유를 알게 되었다. 큰 아이는 대전, 작은 아이는 춘천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어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아내와의 대화가 어려워진 것도 아이들이 독립하게 된 시기와 일치했던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당히 오랫동안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아내와 대화를 이어갔고, 심지어는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부부간의 감정도 조절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의 상태부터 물어보고, 때로는 감정의 골이 깊어져도 아이들을 생각하여 참는 상황을 수십 년 겪다 보니 정작 둘이 있게 되자 둘만의 대화가 어렵게 된 것이다.

 

부부간의 감정이나 상황을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너무도 낯설고 어려웠다. 이렇게 가다가는 평생 부부간에 일상적인 대화를 못 해볼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심지어는 자주 보기도 어려운 자식을 멀리서 끊임없이 걱정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 것 같았다.


원인은 대충 알게 되었지만 회복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토요일에 등산을 가지고 제안하였더니 순순히 좋다고 하였다. 등산이라고 해 봐야 본격적으로 바위를 오르고 산 정상을 목표로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도봉산이나 북한산에 있는 둘레길을 두 시간 정도 같이 걷는 산책 수준이었지만 너무도 상쾌하고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둘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지만, 아이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면 그것이 역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자나 깨나 자식 걱정하고 자식들의 사소한 어려움을 알게 되면 밤잠을 못 이루시며 같이 고민하시는 것을 순전히 사랑이라고만 해석하곤 했는데, 꼭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도 자식 중독증에 걸리셨고, 그래서 생활과 사고의 대부분을 같이 늙어가는 자식들에게 쏟아부어야 맘이 편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자식 중독증에 걸려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놓아주는 것이 정상인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식 중독증에 걸려 평생을 허덕이게 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경험하게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탄수화물 중독이나 카페인 중독에 걸린 것처럼…


아직 아내는 모르고 있지만 나는 혼자서 신혼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조금씩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며 사소한 변화를 관찰하는 경험이, 처음 아내를 보았을 때처럼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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