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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Dec 26. 2019

징크스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편이어서 내 스마트폰에는 바둑과 관련된 게임이 몇 개 설치되어 있다. 몇 달 전에 사활문제 앱을 발견하고 설치하였는데,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하루에 6개의 문제만 풀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비용을 부담하면 수백 개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하루 6문제를 풀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앱이 나에게 징크스를 가져다주었다. 힌트를 보지 않고 사활문제를 모두 풀어내면 그 날은 운이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고, 또 그런 날에는 저녁에 생각해 보면 실제로 운이 좋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내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아 처음에는 6문제를 내 힘만으로 푸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는데 무료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제공되는 문제가 반복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제는 많은 문제의 해법을 암기하게 되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열흘이면 8, 9일 정도는 만점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정확히 아침 9시에 주어지는데 약 5분 정도면 문제를 풀 수 있고, 따라서 그 날의 운은 그 5분 남짓한 시간에 결정되는 것이다. 무엇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처음에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언짢았고, 그냥 앱을 지워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는데 성공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좋아하는 바둑도 즐기고, 열흘이면 거의 9일 이상을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는데 굳이 거기에 얽매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는 정말 필사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노력하면 결국 문제는 100% 가까이 해결되는 것을 잘 알기에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솔직히 이제는 문제를 못 푸는 날은 거의 없어서 그 문제를 통하여 그 날의 운을 점쳐본다는 의미는 사실상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9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운은 내가 만드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며 사활문제를 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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