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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Jan 02. 2020

자리 양보

얼마 전, 약속이 생겨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지하철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지만 비어있는 자리가 없었기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인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런데 그 군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속으로 오늘은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군인이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매일 하며 살았지만 설마 내가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나이가 되었다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괜찮다고 사양을 해 보았지만 그 젊은이는 내 손을 잡고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계속 권하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양보받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조는 척하며 목적지까지 앉아서 갔다.


저녁에 귀가하여 거울을 보았더니 생각보다 흰머리가 많았고 평소에는 눈여겨 보이지 않았던 눈가의 주름도 많이 보였다.

다음 날, 염색크림을 사서 바로 염색을 해 보았더니 어렵지 않게 흰머리를 감출 수 있었다. 먹어가는 나이를 굳이 감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바로 그 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만약에 그 날 내가 현역군인이 아닌, 다른 예의 바른 젊은 친구 앞에 서있었어도 자리를 양보받았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군 복무할 때는 반복교육을 통해 주입된 군인정신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나보다 약하거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승객이 타면 무조건 일어나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 군인도 내가 늙어 보여서가 아니라 허약해 보이는 민간인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었던 것이기를 바라는 맘이 간절했다.


내 또래의 대한민국 사람은 기대수명이 100세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언가 생산적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신체와 정신건강을 모두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그 사건을 겪고 나서는 나의 관리항목에는 외모에 대한 부분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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