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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Jun 08. 2024

사랑없는 인간은 사멸하고 만다

[책 리뷰] 루쉰소설전집, 루쉰 (을유문화사)





제2소설집

방황




나는 오르고 내리며
(나를 이해하는 군을)
 찾아 구하노라

굴원의「이소」에서



 그의 방황은 어쩔 수 없이 나의 방황과 겹쳐 보인다. 감히 그 당대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의 방황과 나의 방황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은 그럼에도 세상의 어수선함과 생의 고달픔이 아릿하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숨을 돌렸다. 글을 쓰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활자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사실적이라 잔혹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네들 삶이라서 더없이 비참하다. 사람들의 마음속 부끄러운 진면목들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루쉰은 가감 없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펜대를 놀린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빌려 스스로의 모습과 그가 바라본 자국민들에 대한 성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은
매우 쓸모 있는 말이다.


 책을 읽다가 그만 멈칫해버렸다. 위 구절을 읽으며 저자의 상황을 바라보며 소름이 소소소 돋았다. 저 말은 곧 나였다. 아무도 모르길 바랐던 속마음이었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작가의 말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진실의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상대방과 나 사이에 짙은 선을 그어버리는 말. 언젠가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나면 '그러게 제가 정확히 말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라고 둘러대며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말.


 그동안 삶 속에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얼마나 많고 많은 선들을 그어갔던가. 타인이니까 모르니까 쉽게 생각하고 바라보던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스스로에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주인공은 길을 가다가 한 비렁뱅이 여자의 질문을 받는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영혼의 유무를 그리고 지옥의 존재 유무를 묻는다. 주인공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모른다는 말로 어영부영 말을 내뱉고 재빨리 그녀를 피해버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은 소식을 하나 듣는다. 바로 자신에게 질문을 했던 비렁뱅이 여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녀의 사인(死因)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뭔가 께름칙한 마음에 그녀에 대한 사건을 마음에 묻어버린다.


 그리고 뒤이어 비렁뱅이 여자, 샹린댁의 기구한 삶이 한 조각 한 조각 작가의 손에서 펼쳐진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이,

 이미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벌써 찌꺼기가 되어
 
혐오와 지겨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수차례 오르내린 상처와 아픔들은 왜 찌꺼기가 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이제는 지겹다고 이제는 그만 좀 말하라고 하는 걸까. 



―.



 그러나 나라고 다를까.


 비참하고도 기구한 삶들에 눈도 마음도 지쳐 한 차례 두 차례 쉬어가며 책을 읽던 나는 뭐라도 달랐을까. 때로는 사람들의 상처를 외면하고 싶어 먼산을 보고, 모른 척하던 나는 진정 좋은 사람이었을까 묻고 또 묻는다.


소설은 늘 이렇듯 내게 물음을 던진다.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들의 삶들에 대해 차마 가타부타 말을 올리지 못한다.


 루쉰도 그들을 감히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재단하지 않는다. 이러쿵 저러쿵 자신의 주관을 담지 않는다. 그저 이 모습도 보여주고 저 모습도 보여준다. 계속 보여주고 또 보여줄 뿐이다.



세상사의 부침이란
판에 박힌 듯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실의에만
젖어 있으란 법은 없다.



 삶이 아무리 벅차고 비극이더라도 사람은 실의에 빠져있지만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 실의도 즐거움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매순간 가치가 있다.






제3소설집

고사신편(故事新編)





 제3소설집 고사신편 같은 경우 중국의 고사(故事)를 루쉰만의 스타일로 재가공한 이야기들이다. 여와가 하늘의 구멍을 메꾼 이야기(女娲补天), 달로 도망친 항아 이야기(嫦娥奔月) 등 중국의 신화, 전설, 고대 문학 등에 등장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루쉰만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언뜻 보면 중국 고사를 전개해 나가는가 싶다가도 언제든지 방향키를 틀고 인물들의 대사를 빌려 루쉰이 살아가던 당대 사회를 풍자한다.



 그중 제일 충격적이던 단편은 백이 숙제에 대한 이야기(고사리를 캐는 사람 采薇) 였다.


 우리는 백이 숙제에 대한 고사를 다음과 같이 알고 있다.

주나라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러나 루쉰은 그들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을 적에는 한 여인말을 빌려 그들의 충정을 가감없이 비판한다. 


"'무릇 하늘 아래 임금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고 하는데 당신들이 먹고 있는 고사리인들 설마 우리 성상 폐하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백이 숙제는 고사리를 먹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굶어 죽는다.                                          


 루쉰은 사람들의 입을 빌려 이런 저런 가정들을 늘여놓는다. 백이와 숙제가 과연 속세로부터 초연한 것이었는가. 과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는 그들의 행위가 옳았던가. 수양산으로 숨어들어 시만 읊는 것이 진정 백성들을 위한 길이었을까.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 수많은 물음들 속 스스로만의 답을 찾아볼 수 있게 만든다. 


 이처럼 루쉰은 우리가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옛이야기들을 날카롭게 풍자해 비판적으로 읽고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고있는 지금, 사실 내가 루쉰의 비수같은 해학과 풍자를 온전히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단편 하나하나의 느낌들, 분위기, 사람들의 시선들,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들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간다.          


 언젠가 나이가 먹고 다시금 루쉰소설전집을 다시금 읽어보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단한 것은
일찍 떨어져 나가지만,

연한 것은 오히려 남는다.



우리에게는 지금 무엇이 남아있는가.


나는 그것이 우리들의 본질적인 마음의 연한 감정들이길, 연하지만 커다란 사랑이기를 바라본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midjourney, baidu

인용 출처 : 『루쉰소설전집』루쉰, 을유문화사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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