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복복서가)
한 예능을 통해 김영하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공감이 될 때도 있고 때로는 어떻게 저런 깊은 사유를 하실 수 있지 궁금해진 적도 많았다. 점점 작가님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문체로 글을 쓰셨고, 어떤 작가이길래 이런 말들과 사고를 하실까 궁금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하지만 제목으로 인해 한동안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겁이 많고 담이 작아 살인이나 피가 낭자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과 무서움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그렇게 이 책을 폈다. 늘 제목에 따라 책을 골랐는데 순전히 작가 이름을 먼저 보고 책을 고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벼운 문체와 문장의 짧은 길이 때문에 금방 읽을 수 있겠거니 짐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치매걸린 주인공의 속도에 맞추어 점점 내가 읽는 속도도 느려졌다.
그렇게 꿈벅꿈벅 책을 보다가 종국에 머리를 세차게 두드려 맞았다. 아 맞다. 이 책 추리소설이었구나 하고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 책은 나의 편견들을 계속해서 부수어 나가는 책이다.
나는 살인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화자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런 인간도 못한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 봐야 한다니 처음에는 거북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미 공소시효도 끝났고 적어도 자신은 발뻗고 잠만 잘 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과연 진정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자신이 끝없이 사유하고 시를 쓰는 작가라 불리지만 결국 본질의 이데아는 끝없는 소멸로,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공(空)이 되었다.
늘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도 화가 났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짓은 이 세상 그 무슨 형벌로도 값을 치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보고는 이같은 형벌이야말로 주인공에게 더할나위 없이 적합한 징벌이자 파멸이다 싶었다.
이따금 주인공이 메타포가 아닌 진실라고 말할 때, 한번씩 살인을 그리워하는 듯 할 때 점점 나의 긴장감 또한 고조되었다. 평범한 듯 전혀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 내면으로 깊게 파고들며 자신을 정당화해나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공(空)이었고 환상이었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_니체"
혼돈은 그를 쳐다보았다. 이내 그는 처절히 망가졌다. 서서히 휴지에 물이 스며들듯 그도 모르는 사이 이미 파멸은 일어났던 것이다. 그의 파멸은 시간으로부터, 그의 자신으로부터, 수치와 죄책감으로부터 발현되었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 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나도 모르게 자꾸 저 말을 곰씹었다. 지난번 후회와 관련된 책을 읽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 기억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사유하게 된 듯하다. 후회도 과거의 내가 한 결정들로부터 비롯된 것,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나의 행동들이 나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이어가다 보니 현재의 내가 그냥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게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작가는 낯선 소재, 신기한 조합으로 소설을 만들어냈다. 우리 인간에게 더없이 중요한 기억의 왜곡, 소실, 그리고 파멸에 이르기까지 한 살인자의 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서사적으로도 주인공의 처절한 파멸을 마치 중력에 의해 거대한 무(無)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하나의 별처럼 묘사했다. 읽기 전 화창했던 날씨는 서사가 진행될수록 대포같은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로 내리꽂혔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책을 읽기 전의 내 자신과는 달라졌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복복서가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