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별펭귄 Dec 04. 2023

각각의 힘으로 다들 올 한해도 잘 마무리하기를 (1부)

[책 리뷰]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고 책을 꾸준히 읽었다. 브런치에 글을 게재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을 뿐더러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하트를 눌러 주셔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읽겠다는 올해의 목표도 이뤄내어 감사하다.


 한편 나는 아직 책을 고르는 기준이 명확히 세워지지 않았다. 최대한 다양하게 읽어보려고 시도 중이다. 이번엔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고는 인터넷을 뒤적이다 교보문고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연말을 맞아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결산내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 소설가 50인이 뽑은 소설을 클릭했다.

 


 2023년 출간된 따끈따끈한 소설작품들 중 올해의 소설을 선정한다길래 더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소설가들이 추천하는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올해의 소설 1위는 <각각의 계절> 이었다. 더욱이 작가분들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라고 하니 믿고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은 총 7가지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사슴벌레식 문답', '실버들 천만사', '하늘 높이 아름답게', '무구', '깜빡이',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기억의 왈츠'.  제목 하나 하나에 심상이 절로 그려지며 단어들이 아름다운 노래가사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단편 하나 하나가 모두 나로 하여금 깊이 사고하도록 이끌었다. 주인공들의 삶과 관계가, 그들의 마음이 내게 다가왔다. 각각의 힘으로 각각의 계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공감가는 마음들, 내가 겪지 못한 세대에 대한 어렴풋함을 넘나들었다.


 책 뒷 부분 평론가의 풀이를 읽으며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간 해석들도 알게 되었다. 그에 비해 내가 느낀 감정들과 사색들은 아직은 좀 풋풋하다. 어디 내놓기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롯이 나만의 관점에서 본 각각의 계절을 적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사슴벌레식 문답



소설을 읽고 나서 '어슴푸레'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꽂혔다. 가볍게 읽은 소설은 방금 읽었는데도 머릿속에 어슴푸레 남아있었다. 내가 과연 소설을 잘 이해한 것이 맞을까. 사슴벌레 문답법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책을 한 번 더 펼쳤다. 두 번 읽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방안에서 바둥거리던 사슴벌레처럼 주인공은 기억 속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웅크릴 뿐이었다. 재미있는 놀이 같았던 사슴벌레 문답법은 단숨에 차갑고 날카로운 강요와 차단이 되었다. 조사 '든'의 필연성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바둥거리는 사슴벌레는 다름 아닌 주인공, 나 자신이었다.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 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결국 소설 속 인간들은 자기합리화의 굴레에 묶였다. 한 하숙집에서 한 때의 순간을 공유한 그들은 이제 모두 과거가 되었다. 운명은 속절없이 굴러왔고 어디로든 나갈 수 없이 갇혔다. 되뇌이는 기억에 갇혀 준희는 그렇게 웅크렸다. 버둥거리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같아 한없이 좌절하고 만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아득하고도 갑갑한 미래가 스쳐지나간다.




실버들 천만사

 


 소설을 읽고 나서 엄마 뒤로 스리슬쩍 다가가 살포시 안았다. 엄마는 다 큰 자식이 왜 이러나 싶어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지만 이내 포근한 미소로 같이 안아주었다. 어느 집이든 엄마와 자식간에는 실 가닥이 연결되어 있나보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 가닥이 가끔 희미하게 보일 때는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채운과 반희. 처음에 엄마와 딸의 관계인지도 몰랐다. 그저 친구인줄 알았다. 그만큼 모녀의 관계는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희뿌옇었다. 이혼하고 집을 떠난 엄마는 자신의 부재를 딸이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는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더 멀리했다. 자식은 그런 엄마가 야속하면서도 언제나 그리웠다.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모녀간의 진솔한 대화는 실버들처럼 그들의 마음을 스쳤다. 따스한 봄빛마냥 어루만졌다. 후에 책 뒤에 실린 평론을 보고 '실버들'이라는 노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모르는 세대는 그 실버들 가닥이 새롭고 낯선 형태로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버드나무 흐드러진 공원에서 부모님과 함께 실버들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작품을 읽고 연민이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나에게 연민과 동정은 너무 어려웠다. 결국 연민은 받는이에 대한 기만인 것일까. 하지만 누구든지 남들의 인생을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반대로 내가 동정받으면 괜시리 자존심이 먼저 나서고 속상해지지 않는가.


 마리아는 성당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다. 마리아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비참한 삶은 끝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이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추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다음날이 되면 누구도 마리아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대화의 화제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늘 그렇듯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베르타는 그런 우리들을 전혀 고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고귀하지 않다. 쉬지 않고 떠들며 남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댄다. 때로는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도 한다. 삶은 때로는 너무도 비참하고 부끄러운 순간들 투성이로 얼룩진다. 시간은 우리 속도 모르고 그저 제뜻대로 흘러간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마리아의 대답 안에 답이 있었다. 우리는 각각의 계절을 사는 각각의 존재들인 것이다. 책 속 주인공 하나 하나,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두 그렇다. 우리는 그럼에도 새로운 힘으로 각각의 계절을 나고 날 것이다. 수많은 번뇌와 걱정으로 범벅된 삶이라도 계절은 새로이 다가올테다. 마리아에게 그렇듯, 베르타에게 그렇듯, 우리들에게 그렇듯 말이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교보문고 웹사이트

인용 출처 :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언젠가 마주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