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이전 편에 이어 각각의 단편을 감상한 나의 관점을 적는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형식적 차원에서 느낀 <각각의 계절>은 단어 본연의 짜임새를 가지고 문장을 음표처럼 배열한 매력적인 이야기다.
책에는 각각의 계절을 사는 삼라만상 인간사가 등장한다. 인물들의 심상은 공감을 부르기도 하고 왜 저러나 싶은 사람도 등장한다. 하지만 오늘도 이만큼의 삶을 경험했고 감상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먼 훗날 이 책을 다시 읽고 이 글 두 편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내가 작가님만큼 나이를 먹으면 느끼는 바가 또 새로워 질 것 같다.
땅은 잘못이 없었다.
소미는 그 땅의 무구함을 믿었다.
···(중략)···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소설 군데군데 대구처럼 문장이 이어진다. 땅은 무구하다. 인간은 무구하지 않다.
현수와 소미는 부동산을 계기로 친해졌고 멀어졌다. 갑작스레 잠수를 타버린 현수로 인해 소미는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그러나 운이 좋아 문제의 그 부동산으로 소미는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삶을 산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돈으로 관계 맺지 말라는 옛 어른들 말이 생각난다.
그러는 한편 소미는 언젠가 현수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외로움은 현수를 기다리고 싶어질 만큼 지독하다.
의도치 않게 무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외로운 마음을 다쳤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도 무구하지 않다. 시간의 무구함과 진실의 무구함만이 존재한다.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쉽사리 싫증 낸다. 어쩌면 세상에 전쟁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깜빡이는 ―비상상황을 비롯하여― 미안함을 표하거나 감사함을 표하는 자동차 언어다. 나는 웬만해서 자동차를 탈 때 깜빡이를 자주 누르는 편이다. 끼워 넣어주신 상대방의 마음이 감사해서 깜빡깜빡, 내가 섣불리 끼어드는 바람에 상대편을 놀라게 한 것이 미안해서 깜빡깜빡 비상등을 켠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내가 깜빡이를 받아야 할 상황에 깜빡이지 않는 앞차를 보면 괜스레 화가 난다. 깜빡이를 무조건 켜야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매너가 영 꽝이다 싶은 마음에 기분이 나빠진다. 반대로 깜빡이를 켜주는 분들께 느끼는 감사함은 배가 된다.
깜빡이는 이 책에서 혜영의 감정 변화를 알려주는 센서가 되었다. 감정을 숨기고 가면을 쓰는 혜영. 감정을 드러내고 몸을 숨기는 혜진. 둘은 한 배에서 나왔지만 같은 듯 다르다.
함께 담배를 피우는 순간만큼은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공중으로 뿌연 연기가 흩어진다. 갑갑히 갇혀있던 몸과 마음이 해방된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의 독성은 정말이지 치명적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나 역시 공감한다. 말의 독성은 마음도 몸도 병들게 한다. 아무리 기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말의 독성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때로는 인간을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섣불리 말을 내뱉지 않는다. 생각하고 되뇌고 내뱉으려고 노력한다.
정작 가까운 이들에게는 필터가 쉽게 느슨해진다. 여과되지 않은 말 찌꺼기들은 나의 사랑하는 이들을 할퀸다.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여과되지 않은 독성이 흘러간다. 할퀸 자국에 눈물을 흘릴지라도 독의 언어는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된다. 흉터자국은 그렇게 오래도록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했던 어리석은 말들을 후회한다. 대신 오늘 하루 그들이 더 웃기를 바라며 방긋 웃어본다. 따뜻하게 데워 온 말을 내뱉어본다.
제일 매력적으로 와닿은 단편 제목이다. 기억의 왈츠. 1 2 3. 하나 둘 셋. 나는 찰칵이 먼저 떠오르는데 작가는 왈츠가 먼저 떠올랐나 보다. 지나가버린 진정한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재회의 희망이 왈츠에 녹아들었다.
다만 내용은 내 마음에 저 아래 숨겨둔 무의식을 끄집어냈다. 공감하지만 공감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이어졌다.
당시의 나는 그런 모호하고 어두운 기운을
가만히 품고 있기만 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있는 그대로
때로는 더 과장해서 드러내곤 했다.
나의 속상함을 억울함을 그 모든 어두운 기운을 누군가가 알아채주길 바랐다. 공감받기를 원했다. 나의 어두움도 그렇게 과장되었다. 과장해서 발산한 기운이 문득 느껴질 때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한편 학대의 기억은 강렬하다. 수 십년이 흘러도 뇌리에 꾹 박혀있다.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후회로 점철된 기억은 부끄럽고 가슴아프다. 다시금 도망치고 싶어질 뿐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도망치지 않는다. 희망을 가진다. 기억의 왈츠는 희망을 상징한다. 기억은 비로소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하나 둘 셋 왈츠를 출 날을 고대하며 그렇게 책의 막은 내린다.
하나 둘 셋 나도 내가 사는 이 세상도 희망의 왈츠로 가득 찰 날을 고대하며 글의 막을 내린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각각의 계절』권여선,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