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별펭귄 Apr 19. 2024

어차피 인생은 내 뜻대로 온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책 리뷰] 호랑이를 봤다, 성석제 (작가정신)



 나 자신과 약속한 대로 틈틈이 세법과 관련된 책을 보고 있다. (지금도 읽고 있는 책이 있다.) 하지만 내용의 방대함, 나의 부족한 지식, 생각보다 잘 따라주지 않는 머리 덕분에 독서 권태기가 올락 말락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다 그중 제일 얇은 성석제 작가님의 <호랑이를 봤다> 책을 집어든다. 세법에 파묻힌 지금의 나에게는 잠깐의 환기가 필요하다.


 사실 이 책은 옛날에 읽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오늘 처음 보듯 반갑게 맞이해 보기로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작가님과 책에게 인사하며 설레는 마음을 장착하고 영접한다.



  

인생은 반복이다.


 책을 읽는다. 아무 말 대잔치가 열렸다. 작가의 의도, 책의 일관된 주제는 전부 호랑이가 가져갔나 싶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이 책을 펼쳐 든 것처럼 작가도 아무 생각 없이 주저리주저리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써나가는 듯했다. 그동안 심신이 지쳐있어서 그런가. 알게 모르게 지녀왔던, 책에서 무엇인가하나라도 얻어가야 한다는 부담을 잠깐 내려놓는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책을 아무 생각 없이 읽으니 편안했다. 아니 한편으로 조금 걱정은 있었다. 책은 읽었고 책리뷰는 적어야 하는데 나는 이제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여차하면 작가님의 글쓰기 화법을 배워 글을 적어볼까, 아무 말 대잔치를 벌여볼까 별별 잡생각들이 순간순간 끼어든다.


 조각조각 흩뜨려진 퍼즐 조각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이 작가님의 글이 딱 그런 느낌이다. 이리저리 글감들이 흩어져 있다. 이 글이 어느 부분에 맞는지 대보고 맞춰보는 것은 오롯이 독자에게 넘겨준다. 복잡하고 어려운 퍼즐 맞추기는 사양하고 싶지만 우선 작가님의 이야기를 마음 보자기를 넓혀 한아름 받아 든다.




 글감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맞춰보다 이내 포기하고 그냥 읽는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두꺼웠으면 나는 바로 작가님께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작가님, 재미있고 공감되고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추며 사방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데, 근데...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내가 도대체 무슨 글을 읽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며 글자들을 건너 건너 횡단하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말미다. 이 책의 끝에는 소설가의 노트북에 들어있던 이야기, <호랑이를 봤다>가 등장한다.


 호랑이를 마주치고 화들짝 놀란 나그네가 겨우겨우 호랑이로부터 도망쳐 헐떡이는 숨을 고른다. 날뛰는 심장을 가까스로 붙잡은 나그네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노인을 본다. 노인은 놀라있던 나그네에게 말한다.


자네, 호랭이를 봤구만.


 노인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난 호랑이를 본 것이구나.


 책 속에 펼쳐진 다사다난한 세상사에 내 마음은 어느샌가 화들짝 놀라 책 끝까지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그네와의 차이가 있다면 나그네는 호랑이에 화들짝 놀라보기라도 했지, 나는 그동안 호랑이를 하도 많이 봐서 조금은 무덤덤해져 있었다는 것뿐이다. 호랑이가 호랑이인지도 모르고 그저 미지의 두려움으로부터 멀리 달음박질치던 것이었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 경계선.


 이 책이 딱 그랬다. 사업을 시작하고 또다시 망하는 이야기. 백수인 작가의 글 쓰는 이야기, 거들먹거리며 자기 이야기 늘여놓는 사람 이야기, 사업하자고 꼬시는 친구 이야기 등등 우리네 세상사가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작가는 작가 나름의 기법들로 세상살이를 농담 섞어 가볍게,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 일들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면 어떨까. 나그네가 호랑이를 본 듯 섬찟한 감각에 그대로 얼어붙어 온몸의 털이 위로 곤두서지 않을까.



 


 어느 누구에게든지 만만하지 않은 세상사는 계속된다. 사람들은 사업을 망하고 또다시 사업을 한다. 작가는 글을 쓰고 원고료를 까먹고 다시 글을 쓴다. 그렇게 인생은 반복된다.


커다랗게 보면 우리네들 삶은 다 비슷비슷하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다시 돈을 번다. 욕망하고 욕망을 채우고 다시 욕망한다. 먹고 마시고 잠을 자는 하루가 반복된다. 지구가 돌듯 우리네들 삶도 돌고 돈다. 뱅글뱅글 데굴데굴 하릴없이 돈다.


 작가는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은 우리네들 인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작가님 특유의 해학미를 바탕으로 삶을 글로 풀어낸다.


우리네 인생 하루하루가 굴곡지고 힘들었지만 다시 뒤돌아보면 과거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호랑이를 본 순간은 끔찍하고 무섭지만 나중에는 허풍을 떨며 내가 그때 말이야 호랑이를 마주쳤다니깐 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무얼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가도를

그 무엇을 찾으려고
도는 줄도 모르고 도느냐.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았고 내일 다시 하루를 살 것이다. 데굴데굴 구르고 구를 것이다. 책을 읽고 또 읽을 것이다. 돌고 도는 내 인생 속에서 무엇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때로는 감정에 때로는 이성을 오가며 구르고 구를 것이다. 지구가 돌듯 나의 인생도 돌고 돌 것이다.



나는 다시 인생을 반복하러 간다. 다시 돈다. 다시 책 읽으러 간다.


그것이 삶이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민트별펭귄

인용 출처 :『호랑이를 봤다』성석제, 작가정신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