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문득 평상시처럼 책 리뷰를 쓰다가 한 가지 고민에 부딪혔다. 하나의 책에 실린 여러 편의 단편소설들을 어떻게 리뷰해야 할 것인가. 모두 작가가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창작한 각각의 소중한 세계들인데 내가 가벼이 한 권으로 뭉뚱그려 리뷰를 달아도 되나 싶었다.
결국 한 두 문단일지라도 각각의 단편들에 대한 나의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2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3편의 단편소설들,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 대한 서평이다.
100년 뒤, 50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면 이런 모습일까. 그곳에도 우리네들과 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구 그리고 우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이 각각의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 단편 |
감정이 물성을 띄고 있다면 어떤 형태였을까?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한 돌멩이 형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과거 학창 시절 때 유행하던 '절대반지'가 기억나기도 했다. 절대반지란 끼고 있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색이 변화한다(?)는 반지로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제품이다. 한편으로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던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애니메이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순간순간 내가 감정으로 인해 촉발되는 행동을 자제력 있게 통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굳이 고른다면 감성에 조금 더 치우쳐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감정에 지배받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답답한 순간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내 감정조차 나를 따라주지 않다니 좌절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분노와 좌절, 답답함 등 부정적인 감정에 슬퍼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도 잘 느낄 수 있어 좋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환히 웃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점점 깨닫고 있는 중이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감정의 물성>에서는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을 초콜릿, 돌멩이, 디퓨저 등의 볼 수 있는 형태로 내놓는다. 보고 만져볼 수 있는 물성을 띄는 감정들. 호기심이 동하면서도 주인공과 같이 그저 상술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의심 역시 들었다.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정하에게 말하는 보현의 말을 읽었다.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그저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마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의 마음이 또는 나 자신의 마음이 도통 무엇인지 모르겠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도 간절히 알고 싶을 때, 내 속을 뒤집어다가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훤히 보여주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실재하는 물성을 바라게 되는가 보다.
| 단편 |
엄마가 실종되었다.
그러니까, 죽어서야 실종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엄마의 데이터 베이스가 사라졌다. 엄마가 소중히 여긴 물건을 토대로 인덱스를 찾는 여정 속에서 지민은 엄마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지민이 알고 있던 엄마는 자신과 올바른 모녀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엄마 찾는 여정 속 지민은 깨닫는다. 엄마의 삶은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 이미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음을 말이다.
공상과학 소설 속 모녀관계는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녀 관계와 유사했다. 아니 오히려 SF 세계관이기에 더더욱 그들의 세계가 새롭고도 익숙하게 와닿았다.
소설 속 소재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던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군데군데 심어 놓은 서사에 비해 풀리지 않은 내용이 궁금했다. 아버지와 7년간의 단절, 동생 유민과 엄마와의 관계, 동생 유민과 나의 관계가 궁금했다.
더 기다란 장편의 서사 속 공상과학을 소재로 지민의 삶을 차근차근 풀어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물론 그럼에도 엄마를 이해하는 지민의 감정이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모두가 죽음 이후를 궁금해한다.
죽음 뒤에도 삶이 존재할까? 삶은 단절된 이후에도 여전히 삶일까?
소설은 죽음 뒤에 발생한 분실 사건을 다룬다. 상당히 인상적인 SF 공상 과학 분야였다. 뇌를 분석한 데이터 형태로 남는 추모 공간이라니 그동안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관내분실', 매력적인 소설 제목과 함께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죽음 이후의 데이터 마인드 소재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특히 한 사람의 데이터가 그 사람의 영속성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사고방식이 흥미로웠다.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만약의 나의 데이터가 분실된다면 나는 어떤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내가 가진 물건들, 내가 창작한 것들을 하나씩 되돌아보았다. 더 많은 추억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도록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 단편 |
재경은 우주로 가지 않았다.
대신 바다로 뛰어들었다.
심해로 간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을 받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렇다. 지구에는 바다가 있었다. 인간은 바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 저 바닷속도 전부 알지 못한다.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고 달과 화성을 여행한다. 하지만 해저는 우리에게 그저 어두운 깊은 바다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가끔 심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면 나는 심해에는 도대체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신화 속 인어, 바다괴물들이 저 먼 심해 속 실재하는 생물이면 어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 적도 있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가 마치 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바다를 택한 재경의 마음이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작가가 그려낸 서사들이 매력적인 까닭은 미래에도 여전히 과학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멋지고 우주가 한 발 더 가까워진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을 것이다. 공감하고 더 나은 삶을 꿈꿀 것이다.
미래에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따스한 마음의 빛을 사람들에게 쬐어줄 수 있다. 그런 작가의 따스한 빛이 내게도 조금은 스며든 느낌이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