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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Dec 24. 2023

이 책은 하나의 침묵이다. 이 책은 하나의 질문이다.

[책 리뷰] 별의 시간, 클라리스 리스펙토르 (을유문화사)


 어려운 책이다. 두 번 읽었다. 이해되지 않는 문단은 몇 번이고 되돌아가 곰씹었다. 사색에 잠겼다. 그리고 나의 해석을 덧붙였다. 가난에 대해, 우연에 대해, 우리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 과정의 순서를 담아 서평을 쓴다. 작가의 마지막 물음을 여러분들께 먼저 바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빛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첫 번째 읽기


이 책은 음소거된 사진이다.
이 책은 하나의 침묵이다.
이 책은 하나의 질문이다.


 처음 책장을 열고 얼마 가지 못해 나는 당황했다. 이게 전부 무슨 말이지 싶었다. 읽을 수 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문장이 나의 머릿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는, 아예 노크조차 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첫 시작이였던 저자의 말부터 공황 그 자체였다. 문장을 몇 번이고 되돌아가 읽어보았다. 아득한 사고의 깊이만이 느껴졌다.


결국 여러 번 책을 읽을 각오로 무작정 읽어내려갔다.



나는 말없이,
공허에 대해 명상한다


 어느덧 북동부 여자에 대해 그리고 '나'로 등장하는 호드리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한편으로 너무도 이해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호드리구는 곧 마카베아였고 그 둘은 다르지만 같았다.


모순이었다.




 어느 순간 글들이 눈에 잘 들어왔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치 내 머릿속 같았다. 난잡하면서도 정제된 사고의 흐름이었다. 여자에 대한 호드리구의 생각이 펼쳐지다가, 여자의 삶이 무심결에 펼쳐지다가, 사념들이 인간들에게 질문을 하다가...



 답을 찾을 수 없는데 나의 영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문장들의 나열 속 찰나의 틈새로 인생의 통렬한 깨달음들이 번뜻 스치고 지나갔다.


본래 새로운 것은 다 두려운 법이다. 


 책장을 덮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읽었으되 읽지 않은 기분이 들어 책을 다시 들어올렸다.


다시 되돌이표다.





두 번째 읽기



온 세상이 '그래'로 시작되었다.

한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그래'라고 말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하지만 선사 이전에는
선사의 선사가 있었고

'아니'와 '그래'가 있었다.

늘 그랬다.


 작가의 말대로 그녀의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끝나는 순간에 끝이 난다. 나는 여전히 이해 할 수 없다. 하지만 '호드리구'의 많은 속삭임들은 나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또 깨우치게도 했다.


'아니'와 '그래' 는 마치 죽음과 생명으로 다가왔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상반되는 단어들이다. 수많은 생각에 잠긴다. 호드리구는 생각을 만든다. 말을 잇고 문장을 만든다. 그 안에 마카베아가 나타난다.


내 기쁨 역시 나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슬픔에서
생겨난다는 것,

그런데 그 슬픔은
불발된 기쁨이라는 것.


 세상에 '그래'와 '아니'가 존재하듯, 기쁨과 슬픔이 존재한다. 슬픔은 불발된 기쁨이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존재한다. '아니'와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서
별을 기대하지 말라 :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을 테니까.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별'은 아름답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별이 아니었다. 생성하고 반짝이고 소멸하는 별들의 시간이었다. 


 반짝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반짝인다는 것은 어둠과 빛이 번갈아 반복되는 행태를 말하지 않는가. 어둠과 밝음이 반복되는 삶. 그것은 호드리구의 글쓰기다. 그것은 마카베아의 삶이다. 결국 우리들 모두의 삶이다.



어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마카베아의 삶은 반짝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연에 의해 그저 태어났고 전쟁이 일상인 도시에서 살며 운명에 따라 돌아갔다. 별은 빅뱅을, 붉은 빛을 내뿜고 시간을 다해 소멸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우연대로 별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세번째 읽기,

가난에 대하여



···
슬픔이란 건

 그만한 여력이 있고 달리 할 일이 없는
 부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었다.

슬픔은 사치였다.


 <별의 시간>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서라운드 뷰로 천천히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제 3자였다. 내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건 사치였던 걸까. 작가는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슬퍼하고 있는가?




보통의 인간은 모든 것을 향한
굶주림 속에서 꿈을 꾼다.
 
그는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그 모든 것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것을 향한 욕망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는 돈이 많아야 할 권리도 없고 무조건 건강해야 할 권리도 없다. 그 모든 권리가 없지만 그 모든 것을 당연시 여겨왔다. 


 그동안 거만하게 하루하루 행동해 온 내 자신이 떠오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픈 데 없이 성한 몸을 이끌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오늘을 감사한다. 



그녀의 존재는 빈약하다.

그렇다.
 
하지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왜 그녀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데 대한
마음의 짐을 벗으려 애써야 하는가?


 나는 한 방 맞은 듯 머릿속에 멍해졌다. 내 머릿속은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 들킨 지 오래다. 


하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가난은 추하고 무차별적인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아니 가끔은 외면한다. 뉴스를 끄고 아프리카, 지금 이순간에도 전쟁이 일어나는 곳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사를 단절해버린다. 왜일까? 

 

  

사실들은 단단한 돌덩어리다.
당신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들은 세상이 하는 말이다. 




미완성의 끝

답을 구하는 황혼의 길


이 책은 미완성인데, 

왜냐하면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누군가가
내게 그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책을 다 읽고는 눈앞을 쳐다보았다. 황혼의 시간이었다. 다시금 사색에 잠겼다. 붉은 노을 아래 저 멀리 보이는 모든 것들은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이 서평도 미완성이다.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그 길을 찾아가려 한다. 공감과 사랑으로 다가갈 것이다. 


일생동안 이 책의 질문의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침묵의 질문 속 공허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별의 시간』클라리스 리스펙토르, 을유문화사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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