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이 책은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전기인가. 과학저널인가. 처음에 드는 의문이었다. 이내 책의 형식에 대한 궁금증은 소리 소문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질문은 다른 질문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이 여자는 왜 이토록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집착하는가. 그래서 물고기는? 물고기는 도대체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호기심은 결국 이 책 끝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삶을 찾으려고 애쓴 작가의 고군분투를, 세계의 과학적 질서를,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과학적 사실들은 문과라 문송한 내게 어렵기도 했지만 끝까지 이해해보려고 애쎴다. 특정 문단의 경우 다섯 번이 넘게 읽어보기까지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서 책을 읽은 셈이다.
우주의 또 한 귀퉁이가 포획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분류학의 일환으로 물고기를 잡아 분류하는 작업을 표현한 문구들이 인상적이다. 실존주의 철학 아래 물고기가 이름, 즉 학명으로 불리는 순간 그 물고기는 분류할 수 있는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심히 학명을 분류하고 어류로 분류해놨건만 정작 어류는 없었다. 나는 문득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래서 이 모든 미래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지켜봤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궁금해졌다.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진화학, 분류학, 생물학, 심리학 등등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물음표의 천들을 헤치고 나아간다. 그리고 이내 알아차린다. 이미 뒤는 돌아볼 수 없었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과거로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앞으로 읽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연관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두 문장의 끝에 걸린 물음표에 사람들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작가가 궁금해 한 만큼 나 역시도 궁금해진다.
나에게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였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깨달음이 궁금했고 그녀의 뒤꽁무니를 빠르게 쫓아가기 바빴다. 책을 다 읽고 난 순간, 나는 몰아치는 생각의 물결에 휘몰아 내쳐졌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몸서리친다.
어린시절 나는 한때 식물도감과 어류도감에 빠져 살았다. 무언가를 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내가 알아가는 식물 하나하나가 그리고 각종 생김새들과 비늘 빛깔로 알록달록한 어류를 알아가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림을 못그리지만 그들을 그려보려 애썼다. 결국 포기했지만 말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카프카 책을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망치였다. 책의 여운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 충격의 여운인지 모를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크게 숨을 마쉬고 천천히 내쉰다. 삶은 아무 의미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가치있는 것이다. 민들레 원칙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마음의 주위를 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 누군가도 나에게로 와서 행복이 될 수 있다.
* 민들레 원칙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의식중에 나는 , 어린시절의 나는 직관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나는 내 발 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자만해져 있었다.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자(ruler)가 생겼다. 나는 선을 그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그들을 쟀다. 우열을 가르고 편을 나누는 세상 사람들을 비판하며 나 스스로도 어느새인가 우열을 가르고 편을 나누고 있었다. 성경에 나왔던 문장이 생각난다. 나 자신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저 죄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돌을 던질 수 있는 자인가. 나는 물고기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내가 만약 과학을 공부한다면 룰루 밀러와 같이 공부하고 책을 써내고 싶다. 무언가 하나를 파고 그 주변을 깊숙이 파서 삶의 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잊고 살던 자연, 이상한 자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당신도 이 책을 통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곰출판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