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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Jan 29. 2024

사람이란 그리고 문학이란 뭘까

[책 리뷰] 구의 증명, 최진영(은행나무)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님들이 노력을 하고 문장을 다듬고 퇴고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나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감사히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구의 증명> 중 몇 가지는 나의 도덕관과 맞지 않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으며 이야기 전개의 속도와 방향의 모순으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간혹 있었다.


 한편 소설 자체는 흡입력이 굉장하다. 잔혹함, 사랑 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인상적이다.


 또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설 외적인 표현들이다. 독자들이 몰입하기 힘든 초반부를 마치 가벼운 에세이처럼 시작해서 점점 문장과 단락들이 길어진다. 점차 소설에 깊숙이 빨려들어가듯 나선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채운 동그라미와 비운 동그라미로 구와 담의 마음을 대변하는 묘사가 창의적이다.




사람이란 뭘까


 내가 이만큼이나 이 소설에 집중하고 있었구나 깨닫게 된 것은 바로 내 가슴 덕분이었다. 읽을수록 심장 부근이 뻐근해졌다. 사람이란 뭘까. 인생이란 대체 뭘까.


 그들에게 오지 않을 미래인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들에게 행복이 조금이라도 오기를 바라면서 단숨에 소설 끝까지 달려왔다. 공감과 잔인함을 넘어선 사랑.


사람이란 뭘까.


산다는 건 도대체 뭘까.







돈으로 나뉘는

계급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인간은 동물보다 나은가. 우리 사회는 정말 자유로운 사회인가. 돈으로 계급이 나뉘고 사람을 편가르는 사회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돈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사고 팔며 약육강식의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았던가. 가난은 단지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치부하며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짓밟지 않았는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잔인한 현실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 <구의 증명>은 불행한 현실의 이면을 단칼에 잘라내어 잘린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소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나 역시도 돈을 갈망한다. 앞으로도 갈망할 듯싶다. 고민하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나 돈으로, 그들이 지닌 물건의 겉껍데기로 사람들을 은연중에 판단하고 있던 내 자신이 느껴질 때면 자괴감에 깊숙이 빠진다.


 구에게 나 역시 강자였다. 처음에 구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법의 도움을 받으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깡패들이 악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인간인데 저만큼이나 악하고 모질까.



  그런 내게 과거에 본 시사 프로그램 속 한 인터뷰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불법 사채업자들에 대해 다룬 그 프로그램에는 내 또래보다 조금 더 어린 친구가 나온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모두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다. 남겨진 그 친구는 겨우겨우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컸다. 성인이 되어 혼자가 된 그 친구는 돈이 필요하던 와중 간간이 스팸처럼 연락이 오던 불법사채에 손을 대버렸다.


 빚은 단돈 몇 십만 원으로 시작해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계속해서 추심을 당했다. 피해도 소용이 없었다. 불법이지만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었고 애초에 법이 뭔지 알려줄 사람조차 주변에 없었다.




 법의 도움은 멀리 있었다. 세상의 악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최악은 겪어보지 않았다고 무심코 쉽게 생각해버리는 나도 강자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가슴 부근이 뻐근해진 것은.





문학은 그리고 예술은

늘 고통스럽고 불행해야만

하는 걸까




 말했다시피 <구의 증명>을 읽고 나는 심장 부근이 뻐근해졌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공감이 가거나 슬픈 장면이 나올 때면 이따금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 심장 부근이 뻐근해졌다.


 심장부근의 뻐근함은 아픔같기도, 슬픔같기도 했다. 문득 책을 읽으며 아픔까지 느껴야 하나 궁금해졌다. 예술은 늘 고통스럽고 불행해야만 하는 것일까.



 문학이 지닌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그저 무심코 지나쳐버린 현실들을 보여준 구와 담의 삶을 통해 묻는다.


 좋은 문학은 현실을 고발하고 고통과 불행을 논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훌륭한 문학이란 것이 존재하는 걸까. 그 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한가지는 분명하다. 문학과 예술은 모두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에는 삶이 녹아있다. 인간의 생로병사가, 원초적인 감정들이 그 안에 있다.


 자기 꼬리를 자기 자신이 먹는 뫼비우스의 뱀처럼 질문은 돌고 또 돈다. 여전히 그 답은 찾지 못했지만 하나는 깨달았다. 고통을 함께 느끼고 울고 공감하며 동화되는 이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고 또 느끼고 싶은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학과 예술은 나에게 모순이다.


책 속 문자을 더듬어 올라가본다. 표시해둔 곳의 문장들을 필사한다. 필사가 끝나면 다시 다른 책을 읽는다. 그 끝에 무언가 남기를 바라본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구의 증명』최진영, 은행나무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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