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연어, 안도현 (문학동네)
책장의 책들이 돌연 눈에 들어와 전체적으로 한번 솎아내고 정리하던 중이었다. 꽂혀있는 책들을 이리저리 꽂아 넣다가 문득 <연어>를 읽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연어> 책의 표지 그림을 보고 든 왠지 모를 뭉클함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릴 적의 난 무슨 생각을 했더라. 책을 집어 들고 머리를 뱅글뱅글 돌려본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기억을 끄집어 내보려고 노력한다. 가물가물하니 쉽지 않다.
어렸을 적 나는 책을 그저 무작정 읽어댔다. 좀 무식하게 속독을 했다. 그때그때 본능에 충실했던 것 같다. 책 속 내용에 따라 스피드를 빠르고 느리게 조절해 가면서, 때로는 읽었는지조차 모르게 활자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난 책은 읽은 속도만큼이나 잊히는 속도도 재빨랐다.
읽고 나서 감상을 따로 적어두지 않은 책들은 휘발성이 강했다. 내용도 가물가물해지고 책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들마저 공중에 늘 있었던 공기처럼 산산이 흩어져 날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 속에서 잊혀 간 책들이 많아졌다. 어렸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있겠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억울해졌다. 나는 분명 읽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으니 답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밑줄도 치고 메모를 남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어라. 이렇게 읽으면 안 되나.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기록도 해보고 필사도 해보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본다.
아직도 어떻게 독서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 이것저것 탐색해볼 뿐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쓰면 쓸수록 고쳐야 하는 것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진다. 부족한 부분들은 어찌 그렇게 눈에 잘 보이는지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십 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기록이 주는 매력이 있다. 과거에 내가 쓴 글들을 보면 언제 내가 이런 생각을 다 했는지 신기하고 새로울 때가 있다. 기록을 꾸준히 쌓아나가는 나 자신도 제법 마음에 든다.
그런데 말이다. 과거에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읽고 끝났던 책들은 그대로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꽤 오랜 시간 나에게 남아있던 궁금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읽었던 경험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 책들에게 한 가지 묘한 점이 있다. 한번이라도 읽었던 책은 무언가 감정의 아련한 구석이 남아 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주 긴 터널 속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빛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런 무언가의 형태가 나에게 남아있다.
책 <연어>를 보고 끄집어 올린 내 과거의 감정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었다. 강 밑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맑고 순진한 강, 그리고 그 안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맑은 물고기 떼들.
책 <연어>가 내게 남긴 것은 그런 맑은 순수함이었다.
다시금 책 <연어>를 펼쳤다. 보고 듣고 느낀 게 많아져서 그런지 몸에 와닿고 느껴지는 감각이 어릴 적과는 또 달랐다.
어른이 되어서 본 <연어>는 한 편의 시같은 이야기였다. 자연의 마음을 한가득 담은 책이었다. 어렴풋이 어릴 적 느낀 맑고 순수한 감정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는
고래의 욕망의 크기가
있는 법이다.
책을 읽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은빛연어였다.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고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특이한 괴짜였다. 그래서 더더욱 은빛연어에게 공감했는지 모른다. 은빛연어의 말과 행동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공감했던 어렸을 적 나 자신이 절로 그려진다.
나는
남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은빛연어의 생각들은 그대로 나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은빛연어가 삶의 이유를 찾는 과정, 나홀로 은빛을 내는 이유를 곱씹어보며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초록강과의 대화를 통해 삶에 대해 하나하나 느끼고 배워 나가는 과정, 그 모든 과정들은 은빛연어를 성장하게 하고 곧 나 자신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아닌 것의
배경이 될 수 있어
과거의 나에게도, 지금 이순간의 나에게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초록강과 은빛연어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숙이 와닿는다.
유난히 고달팠던 하루의 퇴근길, 하늘에는 달과 별이 떠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하늘에 뜬 별을 보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평상시라면 어두움을 무서워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을 터인데 오늘만큼은 하늘에 뜬 별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내가 빛나지 못한 하루였을지라도 누군가의 어두운 배경이 되어 주었을 나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날들을 그려본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 하구나 그렇게 생각해본다.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삶의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말이다.
우리는 늘 이유를 찾고 희망과 행복을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그런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연어들의 일생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자연의 이치 속에도 자연의 이치는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나, 맑고 순수함을 느꼈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한낱 꼬맹이였던 나는 과연 작가가 알려주고 싶었던 활자 속에 담긴 삶의 이치와 원리를 알아들었을까.
아무렴 어떠랴. 그 시절 <연어>를 읽었던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 '덕분에 좋은 감정을 배웠어 고마워.' 내 안에 있는 꼬맹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본다.
지금의 나도 책 <연어>를 통해 나의 삶을 그리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오늘 하루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들, 자연스레 스쳐지나가던 바람과 나무들과 하늘의 별들, 그 모든 자연을 헤아려보며 다시 한번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연어』안도현,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