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별펭귄 이야기
우리 집엔 가훈이 하나 있다. '착하고 성실하게 / 굳세고 꿋꿋하게 / 모든 일에 최선을'.
아주 아주 어렸을 적 학교에서 '우리 집 가훈 적어오기'라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부모님께 우리 집 가훈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엄마는 저 가훈을 말해주었고 3-4-3-4-4-3 음절 구조도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그대로 신나게 가훈을 공책에 예쁘게 받아 적고는 학교에 딸랑딸랑 들고 갔다.
나는 시를 외듯 가훈에 리듬을 붙여 또랑또랑 외우고 다녔다. 그리고 살다가 힘이 들 때면 속으로 가훈을 외곤 했다. 가훈은 어느새 나에게로 와 하나의 가치관이 되었다.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우리 집 가훈의 탄생 비화가 궁금해진 나는 엄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 있잖아 엄마, 우리 집 가훈 말야. 착하고 성실하게 .
― ... 응 (꽤 시큰둥하다)
― 그거 누가 지은거야?
― ...음 나도 모르겠는데?
― ...어? 우리집 가훈 아냐?
― 그거? 뭐 가훈이라면 가훈이지..?
― 아 엄마 장난치지 말고오오. 그럼 우리집 가훈은 어디서 난 건데?
― 펭귄아, 저기 액자 보이지? 그거 실은 어떤 아저씨한테 사온 거야.
(살포시 첨언하자면 우리 집에는 가훈 그리고 난초가 멋들어지게 그려진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액자다.)
― 아니 무슨 가훈이 조선시대 후기 무슨 족보야? 사 오게?
― 진짠데. 옛날에 엄마가 뭐 사러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액자에 그 글귀를 적어서 팔고 있길래 사 왔어. 그리곤 어느 날 네가 학교에 가훈을 제출해야 한다고 채근하길래 저 문구가 딱 괜찮겠다 싶어서 쥐어줬지..?
― ?!2#@$!@#$%^&!!!
나는 뒤늦게 몇십 년은 지나고서야 우리 집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가 그렇게 우리 집 가훈이니 내게도 인생의 귀한 가르침이다 여기고 살아왔는데..! 그날 일순간 일었던 실망감, 허탈함, 충격들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착하고 성실하게
굳세고 꿋꿋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훈 덕분에 어린 시절 풍파 많은 시기 엇나가지 않고 나답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 감사함이 밀려왔다.
좌판을 깔고 서예를 하는 한 아저씨의 가르침은 한 아이에게 다가와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어린 내게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간에 참 귀한 조언을 해주신 그 분께 감사드린다. 그 분께서 자신이 써오신 글들을 뿌듯해 하셨으면 좋겠다.―
지금껏 나를 살아가게 한 삶의 묘한 이치가 신기하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삶의 동력이 되어준 문장의 힘들이 대단하구나 새삼 느낀다.
여하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멋들어지게 한번 살아보겠다고 가훈을 외고 살았다. 저 가훈을 열심히 외워 귀한 보자기로 한 겹 두 겹 돌돌 싸맨 채 마음 한 구석에 놔두고 그 말마따나 실천하며 살아왔다.
나는 그동안 내가 주어진 일들에 대부분 최선을 다했다. 순간순간 주어진 삶들에 충실했다.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정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도리 등에 대한 소신으로 꿋꿋하게 살아왔다. 매 순간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그럼에도 내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애먼 풍파들만 찾아오는 듯싶어 속상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인생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걸까. 과연 내게도 빛들 날은 찾아오는 것인가.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화가 많은 시절이 있었다.
―.
사실 세상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들을 돌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독서였다. 나 자신을 차근차근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바둥거린 나의 몸부림이 글쓰기였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는 나에게로 와 삶의 귀한 자산들이 되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들고 세상의 수많은 멋진 사람들을 인생 멘토로 삼을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가훈을 보고 나를 바라본다. 착하고 성실하게 굳세고 꿋꿋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는 지금의 나 자신이었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내 주변에는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서 나의 성실함은 나를 향한 타인의 신뢰가 되고, 나의 착함은 남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때로는 호구 머저리 같고 한 번뿐인 인생 손해를 많이 보고 사는 것 같을 때도 많다. 하지만 선(善)하게 살고자 하는 나의 노력들은 그 자체만으로 내게 자부심이 되어주고 나를 나 자신으로서 빛나게 해주는 것들이다.
사랑과 공감을 키워드로 굳세고 꿋꿋하게 살아왔기에 삶의 고된 시련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수많은 실패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 또 타인에게 삶의 가치를 부정당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살아보려고 아둥버둥 거린 시절들이 있었다. 실은 지금 퇴사를 목전에 둔 나의 삶도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성공한 인생이라 보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나의 소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꿋꿋한 용기가 있다. 두려움을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가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는 굳센 의지가 있다.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사소해보이는 일들도 순간순간 마주하는 일들도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삶의 결과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나의 능력들을 만들었다.
한 권 한 권 집중해서 읽었던 책들은 나에게 문학적 소양이자 글쓰기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틈날 때마다 뽀짝 뽀작 만들고 쌓아나간 PPT 능력은 공모전 수상이나 직장에서 크고 작은 기획의 순간들에 직접 참여하며 실전 경험들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올린 글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함을 나눠주고 공감하고 사랑하고 싶다.
나는 다시금 착하고 성실한, 굳세고 꿋꿋한, 모든 일에 최선인 민트별펭귄이 되어보고자 한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승질도 나고, 나는 여전히 나이겠지마는, 그럼에도 난 나답게 살아가보려 한다.
다시금 내 삶의 동력이 된 문장에게 고마움이 가득 담긴 인사를 건네본다.
감사합니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