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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May 13. 2024

펭귄은 남극의 매서운 바람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집단 따돌림은 없어져야만 한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네요>

브런치 북을 읽고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브런치 북 <인생에도 계절이 있네요>를 읽었다. 가슴이 아리고 목이 매었다. 속상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매 글마다 딸에게 보내는 아빠의 메세지에서는 읽는 속도가 더뎌졌다.


 이 메세지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에 피눈물이 나고 속상하셨을까 이 문자를 받은 따님은 또 얼마나 속상하고 그럼에도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좌절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을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읽고 마음 다해 공감하는 것, 따님 분의 건강과 행복을, 딸을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oweroflove

(↑↑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글 보러가기 링크 ↑↑)



 사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애써 마음 속에 깊숙이 아무도 모르게 묻어놓은 기억이 떠올랐다. 여전히 흐릿하고 뿌옇다. 뿌옇게 된 것은 내가 그동안 흘리고 또 흘렸던 눈물이 아직도 기억 언저리마다 끈끈이 매달려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의 자존감 여기저기에 끈을 매달고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또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그 기억이었다. 나는 억지로 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내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기에 잊고 또 잊으며 단순하게 살아야 했다. 많이 웃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일생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은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가 없다. 사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한번쯤 그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그 당시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살고 싶지 않았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매일 밤 천장을 바라보며 숨죽여 울기만 했다. ―실은 주무시는 부모님이 혹시라도 들을까 제대로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죽을 용기조차 없는 내가 바보같았다. 죽지도 못하는 나는 하루하루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버티고 버틴 끝에 나는 중고등학생을 거쳐 어른이 되었고 나는 지금의 나가 되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이만하면 그래도 잘 컸다 펭귄아~






 처음으로 세상밖에 억지로 잊고 감춰두었던 일을 꺼낸다. 이 일을 밖에 내어놓을 용기가 생겼다.


 그저 이 일도 내가 겪은 하나의 경험이니까. 내 스스로가 전혀 부끄럽지 않고 이 일을 숨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말을 꺼낸다.


물론 간간이 쓰며 나는 울 테고 또 마음이 많이 아릴 테다. 그래도 한 자 한 자 나의 경험들을 멀리 허공 중에 흩날리듯 적어보기로 한다.



―.




 나는 집단따돌림의 피해자였다.

 

 






집단 따돌림은

없어져야만 한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 집단따돌림을 당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내가 당한 것은 일명 '은따'라는 것이다. 은따란 은밀하게 왕따를 시킨다는 의미로, 특정 공간에서 한 사람의 존재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은따는 주변 어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고 조용히 진행된다.


 그 시절 나에게 행해진 것은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 냉대였다. 나는 사방이 가로막힌 교실 속에 고립되었다. 나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딴 섬이었다.


 그들에게 나의 고립은 놀이였다. 담임 선생님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교직 생활이 문제 없이 끝나기를 바라며 자기 반 아이들을 방임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나는 약 1년이라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텼다.





 가볍게는 교실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며 들어가면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 어느 누구의 시선 한 줄기마저 오지 않는다. 자리에 앉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내 주변은 적막으로 가득하다. '그래, 인생은 원래 고독한 법이니까' 정신 승리를 해보아도 소용없다. 적막은 학교 밖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테니까. 그 영겁과도 같은 시간들을, 월화수목금토, 일주일, 한 달 등을 버티고 또 버틴다.


 그들은 나와 한 조로 청소 당번이 걸리기라도 하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 나를 홀로 버리고 말도 없이 도망을 갔다. 어차피 우리가 도망가봤자 착해 빠진 저 바보 펭귄은 혼자서라도 꿋꿋이 청소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을 게다.





 그러면 나는 정말이지 그들의 바람대로(?) 바람 한 점 없는 적막한 교실에서 적막하지 않은 내 머릿속과 함께 홀로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쓸고 또 쓸었다. 닦고 또 닦았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무장한 순진무구한 나는 '그래.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내 모습을 보고 계실거야' 내지는 '언젠가 이런 노력의 순간들이 빛을 발할 날이 올거야' 라는 생각들을 하며 꿋꿋이 내 할 일을 하고 또 했다.  


 체육시간만 되면 나는 자주 아픈 학생이었다. 나와 짝을 맞춰 공을 주고받을 친구가 아무도 없어서였다. 하는 수 없이 아픈 척을 했다. 선생님은 냉담한 시선으로 '아프구나' 한 마디 하고는 구령대 쪽 의자에 가서 앉아있으라 말하고 다시 수업을 했다. 나는 그래도 답답한 교실보다야 낫다 뭐 그런 생각을 억지로 꾸역꾸역 하곤했다. 결국엔 멍하니 신나게 공을 주고받는 친구들을 부러움에 찬 눈빛으로 감상할 거면서.


― 나름 잘 잊고 있었다 자부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생각보다 쉬웠다. ―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이 하나 있다. 수학 쪽지 시험을 치르기 얼마 전이었다. 당시 나의 왕따를 주도한 친구는 선생님 자리에서 쪽지시험 답안지를 훔쳤다. 그 친구는 은따였던 나를 제외하고 반의 모든 아이들과 답안지를 공유했다.

 

 나는 선생님의 답안지를 훔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고 결국 모든 일은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기 전 나는 담임선생님께 친구의 옳지 못한 행동을 말씀드렸다. 학생들의 지도에 별 관심 없었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실관계를 대강 물어보았다. 당사자를 비롯한 친구들이 단체로 시치미를 떼버렸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 거짓말을 하는 애는 다름 아닌 내가 되어버렸다. 선생님은 나를 말을 지어내는 거짓말쟁이로 지목하고 오히려 나에게 호되게 혼을 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나 혼자만으로는 가짜 호랑이를 대적할 힘이 없었다. 교실에서 나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린 사건 이후로 은따는 더욱 심해졌다. '지 혼자 착한 척은 다 하는 재수없는 아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반 아이들의 무관심에 적대감까지 붙어버리자 나는 더더욱 무언가 행동할 힘마저 잃어버렸다.





 여하튼 그 수학 쪽지시험 답안지는 이미 나를 제외한 온 교실 친구들에게 공유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수학 쪽지시험 날이 되었다. 나는 수학을 못했지만 나름 정직하게 아는 만큼 풀어서 냈다. 아이들은 눈치껏 한 두 문제 정도 오답을 써냈다.


 평균 90점이 넘는 반 친구들과 채 절반을 겨우 맞힌 나. 그 결과에 선생님은 단 한 줌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은 나를 교실 앞으로 공개적으로 불러다가 반 평균은 네가 다 깎아먹는다고 혼에 혼을 내셨다. 당시에는 체벌이 있었던 때라 나는 내가 틀린 문제 수만큼 맞았다. 억울했지만 나를 향한 아이들의 시선에 선생님의 냉담한 표정에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꾹 입을 다물고 선생님의 고함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집에 돌아와도 내 편은 없었다. 부모님도, 학원 선생님도 소식을 들은 건지 내 수학점수를 보고는 혼을 내셨다. 점수가 옳은 것일까 정직함이 옳은 것일까. 나도 수학을 잘했더라면 이렇게 혼이 나진 않았을텐데. 나는 미련하게 그 때도 수학을 못하던 내 탓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정말 어린 아이였다. 상담이나 병원을 찾아갈 줄도 몰랐고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몰랐다. ― 지금처럼 왕따에 대한 안내나 별다른 조치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내 상황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혼이 날까봐 무서웠다. 모든 게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 같았다. 모든 것이 사회성이 없는 나, 공부를 잘 못하는 나, 쓸데없이 미련하고 호구같은 나의 문제 같았다.


 그 당시의 나는 위태로웠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그때 나는 사방으로 기댈 곳이 정말이지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외로움에 사무쳤고 모든 일에 스스로의 잘못을 탓하며 자기 자신을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외로운 학교생활을 겨우 버티고 집에 들어가면, 나를 여자 아이로 태어났다고 무시하고 혼내는 할머니가 있었다. 부모님은 나날이 떨어지는 성적에 매일같이 혼을 냈다. 착하고 공부를 잘하는 동생과 늘 비교했다. 교회에서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유학을 떠나버려 어울릴 만한 또래가 없어졌다.


나의 자존감은 날로 위축되었고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 뿐이었다.


두 손을 꼭 붙잡고 하나님한테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당시 나의 기도는 매일 매 순간 매 시간 이러했다.


'하나님 이 세상 그 누구도 저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저는 늘 혼자에요. 하루하루 가슴이 너무 아프고 쓰라려요. 이곳에서 저는 숨 한번 제대로 못쉬겠어요. 저 지금 너무 지치고 힘들어요...

저는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요. 당신이 진정 저를 위한다면 진짜로 저를 사랑한다면 제발 내일 아니 지금 당장 저를 사고사든 돌연사든 뭐든 제발 죽여주세요. 제발요... '


 

 시간은 정직하게 제 발길을 놀렸다. 숨죽여 울고 또 우는 밤들이 지나갔다. 계절이 가고 또 지나갔다. 하늘을 향한 나의 기도는 마음 속에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었다.


인고의 버티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학년이 바뀌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흩어졌고 나는 새로운 학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정말 운이 좋게도 이번에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시금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날 당했던 모든 일들은 그저 잊어버리자 모두 지나가버린 과거다 하고는 마음 속 한 구석에 깊게 땅을 파곤 흙으로 두텁게 묻어두었다.



  ―.





 사실 비슷한 일(은따)을 지금 퇴사하려는 직장에서도 겪고 있던 참이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그네들과 똑같은 인간들이 되고 싶지 않았다. 되돌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꿋꿋이 인사를 했다. 되돌아오는 답변이 성의가 있던 말던 아니 아예 없던 간에 나는 어쨌거나 내게 주어진 업무들을 묵묵히 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 은따 경험이 있었고 지금은 머리가 어느 정도 영근 어른이기에 그럭저럭 덤덤하게 별 생각 없이 대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고민도 하고 먼저 다가서려는 노력도 해보았다. 하지만 세상엔 내 노력 여하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다 큰 어른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게 같은 어른으로써 참 부끄럽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직장은 직장일 뿐 사교의 장이 아니라는 생각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의 무수한 잠재력과 재능들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더 남아있다..! (이번 글은 어디서 줄여야 할지 몰라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한 템포 쉬어 가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쯤에서 쉬고 오시길...!)







훗날

가해자를

만난 이야기



 상처도 아픔도 기억도 조금은 희미해질 무렵, 지나가는 길에 따돌림 당했을 당시 나를 무시하는 데 일조한, 이제는 다른 반이 된 친구를 만났다. 솔직히 무시하고 지나쳤을 법도 하지만 그 애의 음울해 보이는 표정이 꽤나 신경이 쓰여 인사를 했다. (그렇다 나는 호구다.)


―...안녕?


 그 친구는 내가 자신에게 인사 할 것은 몰랐는지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짓다가 다시 음울해진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 안녕...


이제 인사도 했겠다 제 갈 길 가려는 나에게 친구가 조심스레 말했다.


― 나랑..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 어...?   어.... 그래..(?)


얼떨결에 나는 친구의 요청에 승낙해버렸다.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게 친구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어서 친구 옆에,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한동안 서로 말없이 그저 땅바닥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정적을 깨고 내게 말을 꺼냈다.




― .... 미안해...


― 뭐가?


― 그냥 다 미안해... 너 ..너 그렇게... 왕따시킨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애써 잊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굳이 또 꺼낸 친구가 야속했다. 그러면서도 사과를 들은 게 신기하고 묘했다.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해서 남아있던,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질문을 꺼냈다. 이참에 물어본다.


― 그럼.. 그때 난 왜 왕따.... 시킨거야..?


― 네가.. 네가 착해서, 그래서 그랬어.. 너무...착하니까...


― ......착해서?


얼척이 없었다. 속에서 울분이 치고 올라왔다. 착하면 왕따 당해도 되는 법이 있는거야. 뭐야. 저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 글을 적다가도 울컥 화가 치솟는다. 그 순간 친구가 울먹이며 말하던 순간이 생각난다.





― 나 사실 지금 반에서 왕따 당하고 있어. 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친구들이 내 말을 무시해. 나에 대해 모든 걸 무시해...나 지금 너무 힘들어...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는 친구를 본다. 당시의 내가 겹쳐보인다.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왕따를 당하는 게 어떤 마음인지는 알았다.


 나는 그 친구 옆에서 친구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땅바닥을 보곤 말없이 서있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친구가 너무 미운데 또 너무 가여웠다. 저 심정을 아니까 차마 그 친구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친구는 또 무시를 당한다고 느낄테니까..


 그 친구가 울음을 멈추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시덥잖은 말들을 꺼내며 그 길을 그 친구와 함께 걸어갔다.





 실은 지금도 내가 그 때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속상함, 후련함, 슬픔, 안도감, 아픔. 모든 감정이 뒤범벅된 샐러드 같았다.


그중 강한 감정은 아무래도 안도감이었던 듯싶다. 적어도 왕따의 원인이 내 잘못 때문은 아니었구나 안심했다. 내가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었구나. 그저 착한 호구라 그랬던 거구나.


 호구인 스스로가 답답하고 씁쓸하면서도 사과를 받은 그 날의 오묘한 느낌이 아직까지 마음에 길게 남아있다. 옷가지에서 삐죽 빠져나온 실처럼 마음 속에서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마치는 말





집단 따돌림을 어렸을 때 그리고 지금, 두 차례 당했다.


 시간에 마모되고 으스러진 기억은 경험들을 무덤덤하게 글로 풀어놓을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내 마음 곳곳을 베고 지나간 상처들은 오래도록 남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다시금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나의 과거를 하나 둘 밝히는 것이 과연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 나를 오해할 사람들은 오해를 할 것이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할 것이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늘 사랑하고 아껴줄 것임을 알기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결정한다.





 이미 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만큼은 쉽사리 잊혀지질 않는다.


  나는 말이 주는 상처에 무관심이 주는 고통에 너덜너덜 찢어진 종이조각이다. 말이 주는 날카로움, 무관심이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크고 아픈지 잘 안다.


 그래서 말과 글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내 경험은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가 되었다. 과거의 상처와 기억들 때문인지 사실 나는 지금도 사람들을 대할 때 조금 무서워한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저도 모르게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인정욕구와 소속욕구 또한 이 기억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



생각의 회로를 바꿔본다. 너무 대견하게도 나는 그 거지같은 경험 속에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택했다.


 어느 날부터 친구들이 느닷없이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길래,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자기 성찰을 했다. 내가 말하는 방식이 듣는 이를 배려하지 못하나 싶어 말을 조리있게 하도록 연습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흔히 자기 말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지금도 이렇게 주구장창 떠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삶의 경험들 속에서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자세를 배웠다. 삶 속에서 나는 주로 듣는 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다.


 듣는 것도 가만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다. 마치 청각으로 책을 읽는 기분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구나, 저 사람은 이런 단어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생각하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다.


 



타산지석 (他山之石)


 어린시절 자주 들춰보던 사자성어, 고사성어 만화책을 기억하며 4글자에 담긴 교훈을 되새긴다.


 그렇게 나는 적어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적어도 나만큼은 남을 무시하지 말자, 저 사람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 테다. 그런 생각을 말이다.





집단 따돌림은 어른이고 아이고 어디에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마음을 지지하고 또 온맘 가득 응원하고 싶다.



  만약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 힘겨운 시간을 이겨낸 스스로를 대견하다 잘 버텼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다독여 주었음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이겨낸 것들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따돌림보다는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서로 보듬어 갈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를 꿈꾼다. 아이들의 미소가 사람들의 따스한 웃음이 더욱 밝은 세상을 원한다.


나는 그런 따뜻함 가득한 손길을 내밀고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나의 과거를 밝히는 이유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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