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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Apr 29. 2024

펭귄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허당이다.


 상처와 고통에 직면하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면 다 괜찮아질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나다. 심지어 소환된 기억은 때론 나를 고통의 순간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과거는 아예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상처는 흉터가 되어 세월의 흔적이 된다. 


 게다가 지금 또다른 대양(大洋)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남극은 여전히 춥고 바닷물은 여전히 차갑다. 나는 이제 곧 저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테다. 멈칫 주저한다. 바닷물은 당연히 차가울 것이다. 커다랗고 드넓은 바다는 먹이도 많지만 적도 많다. 나는 미지의 바닷속 너머를 바라본다. 


 온몸에 가득 살얼음이 달라붙어 있다. 어린 시절 돌부리에 넘어져 생긴 흉터가 곳곳에 있다. 남극의 추위는 여전하다. 살을 에는 추위가 반복된다. 펭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야 한다. 

 

펭귄이라면 어땠을까. 


아니 나라면 어떨까.



―.



 ―.



저 멀리서 펭귄 한 마리가 걸어온다. 


 펭귄이 좌우로 뒤뚱거리며 걸어온다. 펭귄이 걷는 속도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걸음걸이에 태고적 리듬이 있다. 


 그들은 뭐가 그리 궁금한 건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한다. 낯선 인간들도 특이하게 생긴 빙하도 그들에게는 모두 호기심 천지다.  

 



 펭귄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걷는 모습은 더 귀엽다. 뒤뚱뒤뚱 걷던 펭귄이 미끄러운 빙판에 넘어진다. 하지만 그마저도 귀엽다.


 펭귄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날개를 퍼덕이며 일어난다. 다시 뒤뚱뒤뚱 걸어간다.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다시 돌아갈 집을 향해 걸어간다.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나도 꽤 뒤뚱거린다. 사실 나는 허당미가 넘치는 사람이다. 때론 엉뚱하기도 하고 때론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한다. 때로는 신나게 몸을 흔들며 막춤을 추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글은 '에라 모르겠다 뒤뚱거려 보자'다. 나도 펭귄처럼 뒤뚱거려 보려고 한다. 뒤뚱거리는 나, 엉뚱하고 호기심이 많은 나, 허당미가 넘치는 나모습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들도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찡긋)








나의

엉뚱한

매력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의 엉뚱함이 가장 잘 드러났던 순간은 언제인가. 제일 신나고 재미있던 순간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난다. 





 고등학생 때 일이다. 당시 내 또래들은 보통 멋진 남자 아이돌들을 좋아했다. 하다못해 각자 좋아하는 배우들이라도 한 명씩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땅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다.

 

 그런 내게 한 국어 선생님이 나타났다. 그 분은 외모가 엄청 빼어나지도 않았고 좋은 일류대학을 나온 분도 아니었다. 심지어 유부남이셨다. 이성적으로 좋아할 수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선생님을 스승으로써 한 인간으로써 정말 좋아하고 마음 깊이 존경했다. 


그 분이 학생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들, 순간순간 행동과 말로 엿보이던 삶의 지혜들, 선생님 주위로 몽글몽글하게 퍼지는 온화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학생들을 위해 수업 시작하기 전 엄선한 시 한 편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시던 모습들, 항상 밝게 웃으시며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주시던 모습들. 그 모든 모습들은 여전히 내 안에 온화하고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로 가 선생님의 1등 팬이 되었다.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을 한가득 표현했다. 선생님께 질문하기 위해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온갖 참고서, 문제집들을 공부하며 모르는 문제를 기어코 찾아내 선생님께 들고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쉬는 시간마다 득달같이 쫓아와서 질문을 하던 학생을 단 한 번도 내치시지 않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전부 설명해주신 선생님은 정말이지 천사셨다..


 복도에서 저 멀리 선생님이 보이기라도 하면 후다닥 뛰어가서 90도로 인사를 한다. 이따금 등교시간에 선생님을 맞닥뜨린 날이면 잔뜩 신이 나서 막춤을 추며 교실을 들어섰다. 


 선생님 수업 전 쉬는시간은 경건함의 극치였다. 친구들이 나에게 말도 못 붙였다. 선생님 수업이기 때문에 미리미리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정돈해야 한다며 온갖 난리를 다 피웠다. 당번이 아님에도 칠판을 나서서 지웠고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 교탁 주변을 정리했다. 진도 나갈 부분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나의 동창들은 지금도 나를 국어 선생님 엄청 좋아했던 애로 기억한다.


 심지어 나는 국어 공부만 죽어라 해서 국어 관련 과목들만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선생님 팬 활동에 진심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내가 모든 선생님들을 좋아하고 따르기를 바라셨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팬들은 연예인들에게 싸인을 받는가. 물론 싸인을 받아서 되팔려는 사람도 있지만 순전히 좋아하는 팬심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선생님의 싸인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가 제일 아끼는 공책을 들고 수업이 끝난 선생님께 갔다. 빈 공책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선생님께 싸인을 해달라고 공책과 펜을 내밀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얼마나 호탕하게 웃으셨는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친구들은 쟤가 또 저런다 싶으면서도 선생님의 싸인을 받는 내가 부러웠나 보다. 내 뒤로 줄이 길게 늘여졌다. 교실에 작은 팬싸인회가 열렸다. 선생님은 이 상황이 어색하면서도 즐거우신 듯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소문이 난 것인지 그 날 이후로 학교에 선생님들 팬싸인회 열풍이 불었다. 선생님들께서도 내심 학생들의 싸인 요청이 반가우셨던 것인지 싸인을 흔쾌히들 해주셨다.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엉뚱한 유행이 좋았다. 덕분에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도 돈독해지고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주고받음이 느껴져 행복했다. 


 나는 삶 속에 이런 소소한 웃음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 먹고도 여전히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고 행복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잔잔히 미소가 지어지기를 바라본다.



 


나는야

민트별펭귄





펭귄은 남극이 춥다고 인상만 내리 쓰고 있지 않는다. 오들오들 떨고만 있지 않는다. 뒤뚱거리더라도 넘어지더라도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간다. 


 펭귄은 넘어져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미끄러져도 아무렇지 않게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일어난다. 때로는 미끄러지면 미끄러진 대로 엎드려 간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도 배운다. 넘어지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미끄러지는 모습은 오히려 귀엽다. 때로는 배를 바닥에 깔고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펭귄은 그렇게 펭귄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나는 한 마리의 펭귄이다. 펭귄은 남극의 추위를 이겨낸 극복의 상징이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들은 젠체하지 않는다. 나는야 극한의 추위를 이겨낸 대단한 동물이라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늘 그렇듯 귀엽고 엉뚱하게 그들만의 매력으로 살아간다. 





그렇다. 


펭귄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허당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보려 한다. 

늘 그렇듯 귀엽게, 나만의 매력으로 글을 써본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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