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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May 04. 2024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는 걸 경계한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책 리뷰] 아몬드, 손원평 (다즐링)


 남자아이 한 명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책 <아몬드>의 표지였다. 그의 뒷모습은 오히려 한 소년의 무채색의 무표정을 연상시켰다. 마침 가볍게 볼 소설이 필요했다. 가볍지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럴 때 책은 요긴하다. 어차피 생각이 많을 것이라면, 책이라도 읽고 생각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집어들었다. 



 <아몬드>에는 외부자극에 둔감하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독자는 소년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독자는 마치 소년에 빙의된 것 마냥 입꼬리를 일자로 하고 무표정으로 읽어 내려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특정 상황의 타자가 되어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려다 보는 느낌이다. 


 소년의 삶에 사람이 들어오고 나간다. 이따금 독자들의 무표정이 깨진다. 주인공의 삶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며 또다시 겨울이 온다. 

 



 소년은 감정이 없기에 견뎌낼 수 있는 사건을 겪는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러나 타자이기에 오히려 더욱 선명하고 짙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뇌리를 거세게 강타한다.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일순간 스쳐지나가는 장면에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는 여전히 그 소년이어야 한다. 소년은 무표정으로 무감각하게 사건을 조망한다. 


 타자의 시선과 무표정 속에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문득 깨닫는다. 소년은 신체의 조건 반사들, 따뜻함과 차가움, 간지러움, 신체적 아픔 등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년 역시 이렇게 아파하고 있지 않았을까. 다만 감정으로 표현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몰랐을 뿐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소년의 상실감이 더욱 가슴 저미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더욱 마음이 아리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조력자와 친구들의 존재가 더더욱 감사하다.


 


 독자들은 소년을 바라보며 모순된 양가 감정 사이 그 어디메쯤에서 방황한다. 그가 감정을 깨닫고 진정한 미소를 짓고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기를, 아니 평생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이번 생에서 만큼은 상실감, 슬픔, 고독감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독자들은 이윽고 깨닫는다. 감정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춰본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실관계 속에서 주관적이고 아리송한 감정의 진폭을 겪는다. 


 <아몬드> 이 책이 성장기에 감정과 이성의 사이에서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귀한 시간을 선사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동안 시간과 일상에 감정과 표현들이 깎여나간 어른들에게도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순간들을 곰씹어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함과

감정의

진폭





 소년은 희노애락애오욕을 모른다. 소년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상황에서 대처할 감정과 표현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사람들 속에 집단 속에 자연스레 녹아내리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왜일까.


 감정이 부재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평범함을 노력하는 소년의 눈으로 본 사람들은 더이상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과 전혀 다른,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역설적으로 평범함의 모순을 깨닫는다. 



그런데 말이야,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우리 모두는 결코 서로를 알 수 없고 서로가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저 소년과 일명 평범하다고 하는 우리들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소년과 우리의 차이는 그저 진폭의 크기일 뿐 진폭이 있는 존재라는 것은 똑같은 것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 때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같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단순하고 투명한 주인공의 친구 같기도 하다고 느꼈다. 두 가지 모습 모두 나였다. 때로는 무감각해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나였고 때로는 너무도 투명해서 다 비치는 강물같은 존재가 나였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떠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모두 다르니까.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내면들을 들여다본다. 다시금 느낀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간명한 진리를 깨우친다.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



 내가 소년에게 공감하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특정 집단에서 희생양이 되어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일까. 주인공에게 생각보다 공감이 잘 되어 놀라웠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사람을 배기지 못한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모두들 평범의 범주에 들어 서로가 함께 같이 살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길 바란다. 이 얼마나 모순적일까. 


 하지만 인간은 모두 모순적인 존재들이다. 모순적이고 끝까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서로 다르기에 특별하다. 나는 이 진리를 가슴 속에 늘 갖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진다.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이유도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은 나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책과

사람에

대하여



 주인공 가족은 헌책방을 운영한다. 책 속에서의 이야기는 책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주인공이 그래도 인간을 알아보고 싶어진 이유는 아마도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던 서가에 가득 꽂혀있던 책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아몬드> 속에서 논한 책에 대한 흥미롭고 공감되던 이야기들이 많아 몇 가지 인용한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내가 영상을 보는 것보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도 똑같았다. 나는 상상이 좋다. 상상해보며 이런저런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 나가는 기분이 좋다. 세계가 넓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고 느낄 때면 내 별의 크기가 아주 조금은 팽창한 기분이 든다.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오늘도 이야기를 쏟아내는 책 한 권을 읽었다. 나는 또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남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함께 느끼고 사유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아몬드』손원평, 다즐링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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