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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Jan 17. 2023

보수 공사

마음 공사

입주 초반부터 결로, 누수로 문제가 많았는데 입주 5년째에 접어들어서야 제대로 된 하자보수팀이 방문했다. 재작년 여름 비가 많이 왔을 때 누수가 발생해서 가을에 하자 신청을 했을 때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외벽 균열을 먼저 손 본 뒤 내부 보수가 이뤄질 거란 안내를 들었다. 이듬해인 작년 봄 외벽 보수를 하나 싶더니 여름, 가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연락이 와서 가가호호 방문하여 손을 봐준다 한다. 벽을 뜯어내니 이전에 보수작업했던 것도 엉망이어서 다 뜯어내고 벽 안쪽을 보강해야 한단다. 우리 집은 심한 편이어서 하루 종일 작업을 하고 이틀 뒤에 반나절쯤 더 소요될 거라고 한다. 도배 작업은 설연휴가 지나서야 가능하다.


땅을 파고 지반을 다지고 아래부터 올리기 시작해서 골조가 세워지고 외관이 만들어진다. 우리 아파트는 초반부터 하자 때문에 말이 많았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집집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다양했다. 뉴스를 보면 상상치도 못할 방식으로 잘못 설계되거나 잘못 시공되어 곤욕을 치르는 집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 복잡 미묘한 유전자의 영향으로 우리 모습이 지어지고, 살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성격과 가치관이 자리 잡는다. 유전과 환경은 건물 설계와 시공보다 훨씬 역동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젊은 내담자가 상담을 오면 보호자가 함께 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상담을 하면서 애착과 양육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을 발견한다. 보호자는 전화를 해서 자녀의 괴로움에 공감하기보다는 얼른 나아지지 않는 것에 조바심 내며 상담 진행 상황에 대해 묻고, 때로는 생각보다 나아지는 게 더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20여 년이 누적되어 생긴 문제가 20시간 상담으로 완전히 변화하길 바라는가.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하기에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에는 공감해 드리고, 비밀보장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고, 궁금한 점은 자녀와 직접 이야기 나누시기를 권해드린다. 일반적인 소통의 팁도 함께. 내담자의 입장에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공감되고, 부모님의 조급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치료자로서 느끼는 답답함과 안타까움도 몰려온다. 


잘못 지은 아파트를 고치는 것도 이렇게나 불편하고 더디고 완벽하지 않은데, 사람의 아픈 마음을 낫게 하는 과정은 오죽하랴. 복잡하고 느려서 지치고, 예상보다 큰 변화와 그 결과에 감격하기도 하는 과정. 심리치료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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