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타이어가 벚꽃 안 밟았으면 되었다
눈 두 번 내리기 전에 윈터 장착했으면 됐지
오랜 내담자가 많이 회복된 상태로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하고 있는데 다시금 힘들어하고 있다. 지금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감정을 인식하고 욕구를 자각하고 말로 표현해 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정말 필요한, 그의 마음이 가장 바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다. 한 달만 쉬면 좋겠다. 충전하고 복귀할 수 있게. 아니면 과거 트라우마가 없어서 지금의 스트레스 정도는 잘 이겨내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어디에도 지금 일은 그만두고 싶다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의 완벽주의적 기준이 일을 더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전처럼 누군가가 비난할 것 같고, 한없이 부족한 사람 같고,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져 힘이 든다. 누군가 괜찮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힘들여 하고 있는 노력을 안다고, 늦더라도 해보자고, 미완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 힘이 들고, 들어보지 못한 말이기에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말도 찾기 어렵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까 고민하다가 우울증을 핑계로 쓰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엄살 부리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또 망설여진다. 지금 힘든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꾸며낸 꾀병이 아니고서야 상담실에서 만나는 모든 괴로움은 그 당시 그 사람에게 너무나 진실이고,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이해되는 타당한 고통이다. 우린 힘들어서 힘들고, 힘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힘들고, 힘들어하느라 제 일을 하지 못해 힘들다. 내가 게을러서 못했으면서 힘들다 핑계 대는 사람이 되는 느낌은 무척 괴롭다. 이렇게 생각이 흐르면 애초에 힘들었던 것에 대한 수용도 어렵고, 나는 더 나쁜 사람이 되고, 앞으로 더 나아질 힘을 얻기도 어렵다.
무엇이 필요할까.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다독여주어야지. 그래야 한 걸음 더 내딛는 게 가능해진다. 게을러서 하지 못했다면 딱 그만큼만 반성하고, 이유를 찾아보고, 나아질 노력을 하면 된다. 생각보다 게으름은 동기 부족이나 건강, 체력과 관련이 있어서 이유를 찾는 게 도움이 된다. 혹시 찾아볼 수 있다면 게으르게 만드는 감정을 들여다볼 필요도 있고, 문제해결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겨울, 게으름을 부리다 윈터타이어 교체가 늦어졌었다. 눈을 한 번인가 두 번 맞고 타이어를 갈았었지. 매화가 피고 나서야 사계절 타이어를 다시 장착하러 왔다. 올해 매화가 빨리 피었다니 이 정도는 괜찮다. 개나리 피기 전에 갈면 되지 하고 개나리 개화시기를 검색하다가 생각보다 빨리 피는 걸 보고는 벚꽃까지로 늦춰본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게으름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나름 상당히 바쁜 삶을 살고 있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힘든 건 위로해 주고, 왜 기운이 안 나는가 자문해 보고, 이러저러하게 살아보자 끄적이면서, 타이어를 갈러 와서 커피 한 잔 하는 사이에 이 정도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