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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Mar 20. 2023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의 매력

나를 안다는 것

대학에서 교양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의 강의는 '현대인의 정신건강'이다. 이 강의를 할 때면 첫 주 과제로 학생들의 자기소개를 받아본다. 자신에 대해서 써 보는 것. 많은 내담자들이 취업 자소서를 쓰면서 힘들어하는데 자신의 장단점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자신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장점과 단점을 잘 인식하고 수용하며,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은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강의에 대한 기대와 수강 동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성격의 장단점, 본인의 정신건강은 어떤 것 같은지 자유롭게 쓰도록 한다. 어떤 학생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 정도로 내용이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어떤 학생들은 인생 2회차인가 싶게 생각이 깊고 자신에 대해 차분하게 기술하기도 한다. 단순히 글쓰기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는 것. 중심이 잘 잡힌 느낌을 주는 학생들이 있다.


수련병원 동문회에서 잡다한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데(그러고 보니 하는 일도 참 많다) 새로 개업하신 동문 선생님께 축하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통상적으로 동문회에서는 개업 화분을 보내고, 이름이 각인된 나름 값나가는 볼펜을 보내드리기도 한다. 나 스스로도 개업 화분을 몽땅 죽여버린 전적이 있기에 의향을 여쭙고 선물을 보내드리려 하는데 오늘 통화한 선생님과의 대화가 유쾌하게 머리에 남아서 여운이 오래갔다.


선물을 보내드리려 하는데 화분이 괜찮으시냐 물었더니 화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혹시 원하시는 선물이 있다면 보내드리겠다 하니 화분은 좋은데 어떤 화분인지 조심스럽게 물으신다. 보통 개업 화분으로 많이 하는 스투키, 고무나무, 금전수 같은 걸 보내드립니다 했더니 개업 화분 그 하얀 거 말씀이시죠? 하시더니 상담소 공간에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시며 스투키는 못 생겨서 싫고, 고무나무는 해를 많이 봐야 해서 안 되고, 금전수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한다. 글로 옮기자니 무척이나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크한 말투에 잘 녹아든 친절과 예의가 있고, 취향이 분명하신 분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담백하고 위트 있는 화법이다. 토분 화분을 보내주실 수 있냐, 어느 사이트에서 주로 사시냐 묻길래 개업화분 많이 취급하는 그냥 대중적인 사이트예요 하고 웃으며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시면 링크를 딱 보내주셔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대화가 유쾌하게 재미있어서 웃으며 마무리했는데, 20분 만에 선이 곱고 길쭉한 알리고무나무 토분 화분 링크가 도착했다. 예산이 약간 초과되어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주소를 확인하는 내게 상담소 정식 명칭(무척 긴 편이다)까지 깔끔하게 알려주시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10년 더 젊었던 시절엔 이런 분이 어려웠다. 아무 거나 괜찮다고 웃으며 친절하기만 한 사람이 편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오늘 마음에 길게 남는 여운은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걸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지는 매력이다. 마음이 싸르르하게 진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에게 이 감각은 부러움인데, 부러운 마음이 드나 보다. 나는 눈치 보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속에 없는 말을 꾸며대기도 하는지라,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선배 동문 선생님의 자기표현이 부러워진다. 상담소 홈페이지에서 본 느낌 있는 공간과 이번에 찾아보며 알게 된 선생님의 저서 때문에 부러움은 조금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게 분명하고, 그걸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 있다. 역시 그렇다. 


알리고무나무는 선생님의 상담소 홈페이지에서 언뜻 본 공간에 꼭 어울릴 것 같다.



사진출처: 오브제그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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