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습니다.
새해 다짐을 거창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올 한 해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엉망이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글을 꾸준히 쓰는 것. 또 한 가지는 미루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항상 미루고 놓치거나 벼락치기하는 일이 많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은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MBTI이지만) E와 I가 반쯤 섞여있어서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하기 어려운데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좋지만 잘 몸이 안 움직여져서 먼저 만나자고 잘 못하고, 누군가 적극적으로 불러주면 반색을 하며 나가는 편이다.
약간의 용기와 함께 만나자고 운을 띄우고, 적극적인 동료 선생님이 자리를 만들어준 덕분에 어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19년, 22년에 개업한 같은 병원 출신 동문 선생님들이다. 내가 개업하던 2016년에는 초심 전문가가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후에는 젊은 전문가 선생님들이 좋은 센터를 많이 여는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이다. 아무 모임에나 가서 개업을 하라고 펌프질을 하는 내가 우스워보이기도 할 텐데 동료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좋겠는 사심 가득 섞인 마음이 반, 지역사회에서 진짜 전문가들이 잘 활동하고 정신건강에 이바지하면 좋겠다는 큰 뜻도 반쯤 섞여있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아니고, 수련 기간이 겹치지 않는 선생님도 있지만 개업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이니 할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다. 센터 운영에 대해서, 상담을 하며 감격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상담 주제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우리 모두는 결혼을 했는데 한 선생님은 나처럼 아이가 있어서 워킹맘으로서의 고충도 나눌 수 있다. 경력으로 따지면야 내가 제일 길겠지만, 선생님들의 뛰어난 직관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씨, 사람을 대하는 현명함과 나름의 원칙에 감탄하고 만다. 이런 사람들이 동료로 있어서 자부심이 든다.
일터에 오랜 시간 몸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동료가 얼마나 좋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어제 나눈 대화가 너무 좋았는데, 이 좋은 마음을 섬세한 언어로 전달할 말이 부족해서 '정말 좋아요. 진짜 좋았어요. 너무 좋다'하고 촌스럽게 반복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 함께 스터디도 하자며 신나서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내가 두 분 선생님보다 6살이나 나이가 많은데 내가 제일 철딱서니 없다. 철없이 아무 얘기나 해대는 것이 나이 많은 꼰대가 자기 맘대로 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 '동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동료가 이렇게 좋은 걸 조금 일찍 알았으면 사람들과의 유대가 더 수월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학창 시절엔 같은 반이면 다 친구고 친구라면 다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가르침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학업이나 입시를 함께 준비하는,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필요한 것은 나누고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적당히 감내하는 동료라는 개념으로 서로를 대했으면 보다 성숙한 유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고독한 일인사업자에게 단비 같은 작은 팀이 생긴 기분. 동료로서 함께할 시간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