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빌더 Jan 26. 2023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회 후기

삶과 예술과 자연에 대한 사랑

감상이라는 것은 빠르게 휘발되고 잊혀진다. 전시회를 보고 나와 고작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색 바랜 사진처럼 감정은 희미해져 있다. 급하게 카페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끄적여본다.


무척 행복할 때 뒤따라오는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는 익숙한 감정의 흐름이다.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남편의 몸을 껴안으면서 가끔 울컥하고 행복하다가 슬퍼진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금방 지나가고 말 것이 안타깝고, 훗날 예상되는 향수와 그리움이 벌써 예견되고 만다. 그러면 슬퍼진다. 예상되는 그리움 때문에 오는 슬픔. 전시회의 감상도 이렇게 붙잡고 싶었는데, 펜 한 자루를 사느라 돌아다니고 파리크루아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하는 사이 뭉클했던 감정이 자취를 감추고 짜증스러운 슬픔이 찾아왔다. 삶과 예술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도시의 소음과 소비의 향연에 묻혀버렸다. 느낀 것이 사라진다 해서 가짜는 아니니까, 기억에 기대어 무언가 써내려야지.


나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도 아니고,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문외한에 가까운 수준의 사람이다. 이번 전시회는 우연히 보게 된 전시회 소개에서 블루와 핑크 색감이 너무 예뻐서 인터파크 얼리버드 할인기간에 예매해 둔 티켓이었다.


파랑과 분홍에 더해 노란빛의 색깔이 주는 생생함도 좋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노란색이 음악처럼 퍼져나간다. 그리고 블랙. 때로는 죽음과 어두움을 암시하는 색이지만 그의 그림에서 블랙은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느낌이 든다. 여인의 블랙 드레스, 연주자들의 연회복, 피아노, 탱고를 추는 댄서의 드레스 자락, 그리고 말들의 윤기 나는 어두운 털. 색과 선이 주는 생동감. 그림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의 인터뷰에서 회화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모습에 가슴 어딘가가 뜨거워진다. 파란 나무들 사이로 어두운 빛의 말들이 달려가는 그림을 보며 눈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전시회에서 핑크빛으로 칠해진 공간이 있었다. 아내 샹탈의 그림이 있는 곳이다. 선이 고운 여인. 이렇게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사랑을 만난다는 것, 날 아름답게 보아 그려주는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삶이 주는 선물이다. 볼일이 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다시 돌아와 핑크빛 공간에 한참을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저렇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살을 빼서 블랙 드레스를 입겠다고 속된 다짐도 했다.


자연을 가까이해야겠다. 영감의 원천이 될 거라는 남편의 말. 앙드레가 말도 시인처럼 한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런 그림을 그리고 살면 말이 당연히 저렇게 나올 거야 하고 웃는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얼마 전 봤던 연극 에쿠우스에서 말이 주된 소재로 등장해서인지 앙드레가 보는 역동적이고 삶으로 가득 찬 말의 움직임이 대조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프랑스 자연을 느껴보고 싶단 생각도 해보고.


전시회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는데 마지막 스크린이 있는 곳에서 작품 사진이 아니니 괜찮겠지 하고 담아 온 문구. 자연과 삶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가지고 떠나시기를. 제 작품이 여러분께 날개가 되어 주기를. 작가의 바람이 나에게 와서 통했다.


작가의 이전글 상담에서 상담자의 마음을 사용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