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브랜드 핸드백 디자이너로 일하던 때였다. 결혼을 한 해였고, 아직 아기는 없는 신혼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맞벌이 었지만, 둘의 급여는 합쳐서 5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월 수익이 500만 원 만 되다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돌아보면, 내 무의식에는 (당시에는 딱히 아기라는 존재에 별 관심도, 계획도 없었지만) 부모가 되기 전, 금전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한 남자, 우리가 꾸리는 가정, 셋이 될지도 모르는 가족, 내가 선택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런 마음은 월급 외의 수익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구인 사이트를 뒤져보았고, 동네에 아르바이트 전단지가 붙어 있는 카페와 식당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사람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한 그릇의 크기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당시 내가 아는 수입을 추가로 늘리는 법은 나의 육체 노동과 시간을 시급으로 바꾸는 아르바이트 외엔 딱히 없었다.
그렇게 수시로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다가 우연히 서울시 광화문에서 진행되는 "중고 장터 셀러 모집"이라는 게시글을 클릭하게 되었다. 주말에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 주최의 플리마켓을 여는데, 판매자로 선정이 되면, 빈티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유레카! 이거다!
결혼 전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 명동의 한 공방에서 에르메스 방식의 바느질 공법으로 작업하는 가죽 공예를 배웠다. 직업이 핸드백 디자이너여서 관심이 있기도 했고, 혹시 퇴사를 하게 되면 가방이나 가죽 소품과 액세서리 등을 수작업으로 만들어서 판매해 볼까 하는 나름의 두루뭉술한 계획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배우면서 만들었던 다양한 스타일의 지갑과 팔찌들을 판매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셀러 신청을 하였다.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신이 났다. 그다음 스텝은 판매할 물건을 선정하는 것과 어떻게 판매할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돗자리를 펴고 판매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동서가 예전에 길거리에서 핸드메이드 헤어 핀 장사를 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 사용했을 휴대용 매대를 아직 갖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했더니 집에 있다는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퇴근하고 손잡이가 달린 직사각 형태의 007 가방 같은 매대를 빌려왔다.
만들어 둔 가죽 팔찌와 액세서리, 지갑 등을 모두 꺼내와서 작은 휴대용 매대 안에서 이리저리 디스플레이를 해보았다. 제품만 올려놓기 뭔가 아쉬워서 "따뜻한 봄날 예쁜 가죽 팔찌 커플로 착용해 보세요~"라고 출력해서 붙여 보았다. 연인이라면 흔쾌히 팔찌 두 개 정도는 기분 좋게 구매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에 팔 것인지, 팔찌와 지갑 가격도 하나하나 정해서 숙지하였다.
장터가 열리는 날, 비장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마켓 운영 본부에서 자리를 안내받았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준비해 온 007 매대를 열었다. 어젯밤에 미리 구상해 본 대로 제품들과 출력물의 위치를 잡고, 내 손목에도 팔찌를 하나 착용했다. 이렇게 소박하지만 야심 차게 손님 맞을 준비를 완료했다.
"자기야, 이제 시작이다! 우리 많이 팔고 가자"
10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실용적인 지갑을 사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봄이라 팔찌의 관심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가죽 소재라서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에르매스 공법으로 직접 만들어서 튼튼하다는 장점을 강조하면서 팔았다. 비싸다고 볼 맨 소리를 하면 적당한 선에서 깎아주기도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사할 땐 잔돈을 현금으로 금액별로 두둑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약 4시간 동안 판매한 수익은 약 12만 원 정도. 시급으로 따지면 3만 원. 당시 최저임금이 458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첫 부업치고는 괜찮았다. 이렇게만 매주 판매한다면, 추가로 월 50만 원씩 부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우면 부자가 될 수 있겠지? 단순한 계산법으로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매주 놓치지 않고 셀러 신청을 했고,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면 부지런히 가죽 소품과 팔찌 등을 만들어서 주말을 준비했다. 광화문 중고 장터가 더 이상 운영이 되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4-5번쯤 참여했을까? 홈페이지에 광화문 중고 마켓이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더 이상 부수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몹시 아쉬웠다.
이대로 주말 돈벌이를 끝내는 것이 좀 아쉬웠다. 월급 외 수익의 달콤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광화문 중고마켓에서 정식으로 판매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남편과 매주 007 가방을 들고 판매하러 어디로든 나갔다. 홍대 길바닥에 매대를 펼치기도 하고, 역삼동 어딘가 길바닥에 매대를 펼치기도 했다. 대구인 친정에도 007 가방을 챙겨갔다. 젊은 친구들이 데이트하러 많이 오는 동성로에서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남편과 데이트도 할 겸 돈도 벌 겸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정식 마켓이 아닌 길에 덩그러니 서서 판매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구 시내 동성로에서 몇 시간 만에 묵묵히 서 있다가 한 커플에서 팔찌 2개를 판매하고 16,000원을 번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첫 부업의 막이 내렸다.